한국일보

두루마기

2002-12-1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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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의 고유복식은 저고리와 바지, 두루마기로 돼 있다. 이런 복식은 북방 호복(胡服)계열로 바지를 착용했다는 것은 기마민족(騎馬民族)이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저고리와 바지 위에 입는 두루마기는 고구려 벽화에도 나타난다. 이로보면 이미 상고시대부터 입어온 한민족 고유의 복장으로 추위를 막기위한 방한용으로 착용해 왔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예를 갖추기 위한 의례복으로 그 착용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고려시대까지 여자들도 평상시엔 바지를 입었다고 한다. 이 시대까지만만해도 치마는 말하자면 예복의 기능이 강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북방식 패션이 중국에 처음 도입된 건 전국시대다. 북방민족과 빈번한 접촉을 했던 조(趙)나라 무령왕(武寧王)이 호복을 즐겨 입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그리고 호복의 습속을 중국에 전해준 북방민족은 아마도 고조선이 아닐까 하는 게 일부 학자들의 추측이다.
또 양귀비(楊貴妃)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당(唐) 현종도 호복을 즐긴 스타일리스트로 전해진다. 당시 당의 황실을 자주 드나들던 북방민족계의 영향때문인지 모른다.
고조선 시대부터 내려오는 고유 복식인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차림은 갑오경장후 한국인의 복장으로 굳어졌다. 선비들이 입던 도포, 창의 등을 두루마기로 단일화 하는 복제개혁의 결과다. 이런 오랜 역사 탓인지 두루마기는 한민족의 상징이 된 느낌이다. 고당(古堂) 조만식 선생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두루마기 차림이다.
김구 선생도 마찬가지다. 하얀 동정에 검정색 두루마기. 굵은 테의 돗보기 안경. 백범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승만 박사도 한동안 두루마기 차림이었다.
두루마기 차림의 민족 지도자 모습은 그러나 세월과 함께 사라졌다. 그러다가 DJ가 잠시 두루마기 패션을 선보였었다. 오랜 연금에서 풀려난 후다. 그러나 곧 양복 차림의 국제적 드레스 코드로 패션이 바뀌었다.
두루마기 패션이 또 다시 등장했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범대책위원회 대표단이 민주당 당사를 방문한다. 두루마기 차림의 대표가 눈길을 끈다. 미국에 원정온 한상렬 여중생 사망사건 범대책위원회 상임고문도 두루마기 차림이다.
왜 두루마기 차림인가. 반(反)미의 입장을 보다 극명히 표명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한민족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것인가. 판단은 각자의 몫 같다.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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