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계 속의 한국인들

2002-12-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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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포오먼 칼럼

나는 자라면서 한국에 대하여 들어본 기억이 없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 역사 시간에 한국전쟁에 참가한 많은 미국사람들이 한국 땅에서 희생되었다는 것, 전쟁으로 인하여 한국이 양단 되었다는 정도가 전부이었다. 내가 미국 중부지역의 작은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때에는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이 한국을 전혀 몰랐다.

지금은 어떤가. 한국을 모르는 미국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한국의 존재가 미국에서 짧은 세월에 이처럼 널리 알려진 것을 보면 참으로 놀랍다. 샤핑센터에 가도 한국말을 쉽게 들을 수 있고 고향 길거리에서도 한국에서 만든 차를 쉽게 볼 수 있다. 이 칼럼을 쓰면서 사용한 프린터도 한국산 삼성 프린터이다. 최근 유럽여행 때 벨기에 호텔에서 한국말을 하고 있는 여행자들을 보았고 외딴 아프리카 우간다 공항에서도 한국사람을 만났다.


세계 어느 곳에 가거나 한국사람들이 살고 있다. 러시아동부 사할린 지역 전문가인 동료의 관심분야는 그곳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다. 내가 아는 선교사는 중국 연변지역에 살고있는 조선족과 북한 피난민들을 돕기 위해 해 마다 중국에 간다. 내가 아는 한인 친구는 오랫동안 독일에서 공부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독일어를 영어보다 훨씬 잘하여 나의 독일어 연습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난주 미스터 정과 이야기하면서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쿠바이다. 공산주의국가인 카스트로 땅에서 한국사람이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캐나다 여권을 가진 미스터 정은 몇 년 전에 관광객으로 쿠바를 방문하였다. 미스터 정은 호텔에서 아시안 현지인 을 만나 이야기하는 도중에 그의 조상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쿠바에 한인 커뮤니티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다음 이야기는 미스터 정이 들려준 쿠바에 사는 한국인들의 이야기이다.

1921년에 300 여명의 한국 사람들이 멕시코 동부에 자리잡고 살았다.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을 포함한 이 그룹은 하와이 사탕수수 밭을 떠나 캘리포니아 농장을 경유하여 멕시코 시골에서 보금자리를 꾸미기 위해 멕시코로 간 사람들이다. 1920년경의 쿠바는 멕시코 보다 더 잘살았기에 멕시코로 갔던 절반 정도의 한국인들이 성공을 꿈꾸며 다시 쿠바로 이동하였다. 쿠바에 정착한 이들은 짧은 기간에 사업가들로 성공하였다. 그러나 1959년 카스트로 혁명 말기에 절반정도가 미국으로 도피하였고 나머지 절반은 쿠바에 남게 되었다.

자신이 한국사람이라고 말하는 50 여명이 현재 쿠바에 살고 있다한다. 이들 대부분은 라틴사람으로 변모하여 그곳 말을 하며 그곳 옷을 입고 살고 있다. 이들 중에 80살 이상의 나이든 사람들 중에는 서툴지만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이민 4세와 5세인 그들은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미스터 정은 쿠바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특이한 문화를 보존하기 위하여 하바나에 한인센터를 세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쿠바에서 개인이름으로 건물을 세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건물을 얻기 위하여 정부에 탄원을 하였지만 몇 번씩 퇴짜를 받기도 하였는데 쿠바에 있는 한국 영사관의 도움을 얻어 50여명의 한국계 쿠바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소수민족으로 인정받아 조그마한 사무실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만약에 독자들 중에 쿠바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의 먼 사촌들을 잊지 말고 찾아보고 용기를 주라고 권하고 싶다.

쿠바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 아직도 김치를 먹느냐는 나의 질문에 미스터 정은 한국계 쿠바 사람들이 김치를 아주 잘 만든다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밥하고 김치를 먹는 게 아니고 콩하고 김치를 먹는다고 하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음식은 언어보다 더 강한 끈이구나 “라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이민 연륜이 깊어 가면서 한인 후손들이 한국말을 잊어버린 후에도 한국음식을 맛있게 먹을 것이라고 나는 장담한다.

크리스 포오먼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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