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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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부터의 자유

2002-11-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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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강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끊어질 수 없고 이어지는 것. 내 삶 뿐 아니라 인간이 무리져서 사는 일도 강물이 아닌가 싶다. 나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내 안에서 오래 전 돌아가신 내 아버지를 본다.
그는 6.25를 겪으면서 부역의 멍에를 쓰고 일생을 유리 방랑하다 세상을 떠났다. 동란 후 온가족은 서울을 떠나 살아야 했다. 우리 가족이 그 멍에를 쓰고 살아야 했던 것은 피치못할 운명. 삶의 문제를 평범하게 맞이할 수 없었던 나는 어릴 때부터 굶주림의 문제, 생존의 문제에 부딪히며 살아야 했다.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도 내 피속을 흐르는 것은 아버지의 방랑적인 기질, 삶의 문제에 뒤엉키지 않으려는 구름같은 삶의 태도다.
종종 그는 어린 자식 앞에서 산속의 생활을 동경했다. 멀리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삶이 고스란히 가족들의 가난으로 돌아왔다. 그 도피적인 삶의 태도, 삶 속의 갈등에 뒤엉키지 않으려는 기질이 고스란히 내 차지가 되었다.
나는 사람들을 떠나 살 수 없으면서도, 머리 속에는 저 북한강 줄기의 어느 한적한 곳을 동경한다. 삶이란 강줄기, 단절이 없다. 과거의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잠시 잊혀질 뿐, 나는 이민자들의 삶을 보면서 이 사실을 종종 떠올리게 된다. 그들의 언어와 행동 속에서 과거의 상처를 읽게 된다. 산과 골짜기, “산이 낮아지고 골짜기가 돋우어질 때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라”는 선포는 우리 삶에 있어 그 과거라는 괴물로부터 자유하지 않고는 진정한 삶을 알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누구나 삶의 경험에서 골짜기를 갖는다. 누구나 과거의 경험에서 산처럼 높은 탑을 갖는다. 열등감과 오만의 숨겨진 이름으로 산과 골짜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여기서 자유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리라. 평생 음침한 그늘에서 살던지, 평생 떨어질 봉우리에서 위태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 강물의 흐름에서 자유할 수 있을까? 산과 골짜기를 얘기했던 선지자는 한 두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는 삶이 갖는 허무성을 알리는 것과 함께 이런 인생을 돌보는 ‘큰 손’이 있음을 말한다. “모든 인생은 풀이요, 그 꽃은 풀의 꽃 같다”는 말이 전자의 내용이다.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너무 소리를 높이지 말라는 충고다. 다른 하나는 그런 인생을 돌보는 손길이 있다, 그 손을 의지하라는 충고다.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나는 사람이 과거로부터 자유할 수 없음을 믿는다. 그러나 자유하지 않고는 초라한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딜레마의 삶 속에 내 삶이 갖는 허무성과 신속함을 반추하고 나를 돌보는 손에 나를 의탁하며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

김희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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