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치광이’ 북한 다루기

2002-11-21 (목)
크게 작게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정하면 북한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작은 마을이 있다. 실직한 한 마을주민이 자신의 집 둘레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고는 이웃 주민들에게, 중국 음식을 매일 가져오고 난방비용을 내주지 않으면 자신의 집과 마을 전체를 폭파시켜 버리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엉클 샘으로 불리는 한 경찰이 있다. 이 경찰은 이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져 안전한 지역에 살고 있지만 이 마을을 순찰하고 있다. 이 경찰은 마을 주민들에게 절대로 한 주민의 폭파위협에 굴복하지 말 것을 충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을 주민들은 “말은 쉽지만 우리는 어찌됐든 문제의 이 주민과 더불어 살아야만 한다”고 말한다.
워싱턴과 서울에서 나오는 반응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주 인상적이다. 미국은 북한이 1994년 제네바 협정을 위반하며 은밀히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해온 것을 밝힌 데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반면 한국 주민들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십년간 북한의 위협과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암울한 경제 현실을 인식한 상당수 한국인들은 북한을 전략적 위협이라기보다는 ‘미친 아줌마’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북한의 위협을 믿지 않으며 결국 북미간 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같은 태도가 비현실적일지 모르지만 아무튼 확산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 TV 방송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여성이 “왜 미국이 북한을 협박하느냐”고 물을 정도다.
많은 한국인은 북한의 핵 문제보다는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북한 여성 응원단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하며 관심을 보인다.
대선이 임박했지만 후보들도 핵 문제를 거론하길 꺼린다. 자칫 외국 투자자들을 내몰 수 있는 부작용을 낳게 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 정인문 교수가 지적한 대로 한국인은 북한을 판도라의 상자로 보고 있는 듯하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니 조심스레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여론이 이러하고 중국, 러시아, 일본이 북한과의 대립을 원치 않는 상황에서 미국의 옵션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물론 상황을 진지하게 진단하고 있는 한국의 전략가들은 부시 대통령의 강공책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북한의 미국의 강경 발언에 귀를 기울일 것을 은근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이 큰 몽둥이를 휘두르는 대신 한국 등 우방들은 부드러운 말로 대신하도록 하길 바라고 있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집단 전략으로 보인다. 이 전략은 ‘중지와 대화’를 겸비하고 있다. 부시는 북한이 겨울을 나는데 필요한 중유 공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핵 개발에 대한 벌로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 일본, 한국은 놀랍게도, 만일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면 북한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용의가 있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매파는 북한을 혼내주길 원할지 모른다. 하지만 북한의 주변국들은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 안위를 위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을 북한과 같이 중무장한 나라를 상대할 때 할 수 있는 것은 대량 파괴 능력을 점진적으로 약화시키는 일 뿐이다. 북한 정권 붕괴 시 부작용을 경감할 수 있도록, 핵 프로그램을 축소하는 대가로 식량을 지원하고 무역 및 투자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북한과 같이 제 정신이 아닌 정권은 경착륙하기가 쉽다. 하지만 경착륙할 때 핵무기가 적을수록,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이 적을수록 총체적 혼란과 재앙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택해야 할 정책이다.
토마스 프리드먼/뉴욕타임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