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졸레 누보’축제

2003-01-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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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가을 수확 포도로 빚은 첫 포도주 맛보자”

2002년 수확된 포도로 빚어진 첫 와인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다. 11월 셋째 목요일, 그러니까 올해는 11월 21일 0시를 기해 전세계적으로 출시되는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가 바로 올가을 포도가 수확된 지 7~9주만에 만들어져 나오는 와인이다.


11월 셋째 목요일 자정 세계 각국에 동시 출시


특별한 기대감과 흥분으로 전 세계 와인애호가가 이 날을 기다린다. 조금이라도 빨리 보졸레 누보의 맛을 보려는 사람들 때문에 출시되는 순간 와인케이스들은 콩코드 비행기, 헬리콥터, 자전거, 오토바이, 트럭, 인력거 등 모든 교통 수단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운반된다.
유럽의 각 지역에서는 ‘보졸레 누보와 함께 하는 아침식사’ 모임이 곳곳에서 이루어진다. 아마도 세계 역사를 통틀어 가장 단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마시는 와인이 바로 이 보졸레 누보가 아닐까 싶다.
그 이유는 보졸레 누보가 과일향이 향긋한 가벼운 맛으로 와인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사람도 쉽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지역에서 최고의 영향을 과시하는 조르쥬 뒤뵈프를 선두로 한 ‘전세계인이 동시에 마시는’ 마케팅 전략의 결과일 것이다.
사실 보졸레 누보는 프랑스는 물론이고 보졸레 지방에서도 가장 맛있고 품질 좋은 와인이 아니다. 오히려 약간 질이 떨어지는 값싼 와인에 속하지만, 그 해 수확된 포도로 빚어진 첫 와인을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일제히 맛보게 한다는 마케팅 전략은 매우 성공적인 것이었다. 그 결과 현재 약 4,000개의 와이너리에서 재배된 보졸레 지역의 포도 1/3이 보졸레 누보로 만들어져 판매되며, 지난 45년동안 보졸레 누보의 판매량은 연간 백만 병에서 7천만 병으로 급증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 해 수확된 포도로 빚어진 첫 와인은 프랑스 보졸레 지방이 아닌 뉴질랜드나 호주, 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맛볼 수 있다. 남반구에 위치한 이들 나라에서 프랑스보다 수개월 먼저인 2월쯤 포도를 수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따지면 11월 셋째 목요일 자정을 기해 보졸레 누보를 즐기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 와인 애호가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여전히 보졸레 누보를 기다린다.
이미 보졸레 누보가 출시되는 날은 파티를 하고, 즐겁게 웃고 떠들며 친한 사람들과 모여 와인을 한잔 마실 수 있는 날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보졸레 누보는 출시된 지 두세달내에 마시는 것이 가장 맛있다는 사실도 사람들로 하여금 급히 포도주병을 따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보졸레 누보가 인기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가장 백포도주와 비슷한 맛과 향기를 가진 적포도주이기 때문이다. 와인 초보자들은 주로 백포도주를 선호한다. 미국에서도 전체 판매되는 와인 중 백포도주가 차지하는 양이 적포도주보다 훨씬 많다. 아무래도 떫떠름하고 쓴맛이 진한 적포도주는 처음 대하기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특별한 제조과정으로 인해 떫은맛이 거의 없고, 연하며, 과일향이 향기로운 이 보졸레 누보는 차갑게 하여 백포도주처럼 가볍게 마실 수 있는 것이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큰 장점이다. 참고로 보졸레 누보의 가격은 7~10달러이며 화씨 55도일 때 마시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카페 보졸레’

출시되는 목요일
저녁식사와 제공

우리 동네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카페 보졸레”라는 불란서 식당이 있다. 우연히 알게 된 곳인데, 마치 프랑스 시골에 있는 동네 식당에 온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편한 분위기에 가격도 비싸지 않은 곳이다.
강한 프랑스어 액센트로 영어를 하는 그 곳의 웨이터들의 억양도 분위기를 돋운다. 이름에 걸맞게 이 곳에서는 해마다 보졸레 누보가 출시되는 목요일 저녁에 3 코스 저녁식사와 함께 보졸레 누보를 제공한다. 길가에 난 조촐한 집이지만, 들어가는 현관부터 포도 넝쿨과 잎사귀로 치장을 하고 깜빡이 불을 밝혀놓아서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빈자리가 하나도 없이 꽉 찬 식당에 들어서면 옆 사람과 거의 붙어 앉다시피 가깝게 놓인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새 옆 테이블의 존재를 잊고, 식당 안의 다른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이, 와인과 음식과 같이 간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에 취해서 오랜만에 정말 즐겁게 저녁 식사를 하고 집에 온다. 지난 3년 동안 그 곳에서 보졸레 누보의 출시를 축하하는 저녁식사를 했었는데, 올해는 인원이 늘어서 6명이 함께 즐길 예정이다.
보졸레 누보는 무미건조한 생활 속에서 축배를 들 이유를 우리에게 한 가지 더 가져다준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가치를 지닌 와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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