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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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이 되기 위해서

2002-11-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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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들이 한국인으로서 주체성을 포기하며 서양사람, 특히 미국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이 보인다. 예를 들어 한국말이 영어단어 없이는 의사전달이 안될 정도이고, 청소년들은 최근에 나온 미국 힙합음악에 열광하고, 서구적인 외모를 선호하여 성형수술까지 하는 것을 본다. 반면에 미국사람 중에서 한국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지난 주 한국일보에 실렸던 기사이다. 한국과 사업관계를 맺고 있는 어느 미국 남자가 한국을 좀더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택시운전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유명한 MIT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가졌으면서 한국에서 택시운전사가 되겠다고 하는 그 미국사람이 분명 많은 한국사람들에게는 특이하게 보였을 것이다. 택시운전은 평범하고 다양한 한국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주기에 한국인의 정서를 피부로 체험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그는 매일 운전연습을 하며 운전기사 자격증을 따는 꿈을 꾸고 있다 한다.
그러나 이 미국 남자가 운전기사 시험에 합격한다 하여도 택시운전사가 될 수 없다 한다.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사람이 택시운전사가 되는 것을 금지하는 한국법을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아마 한국 정부의 입장으로서는 외국인이 복잡한 서울 거리를 운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른다. 아니면 운전사로서 한국말이 매우 중요하기에 한국사람만이 한국 택시 운전대 뒤에 앉을 수 있다고 단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법이 서양세력을 배척하던 은둔의 나라(Hermit Kingdom) 사고방식으로, "외국악마들"(foreign devils)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Land of Morning Calm)를 누비는 것을 금지하려는 법에서 유래된 것은 아닐까하고 짐작해 본다.
이러한 한국법에서 유머를 보게 된다. 왜냐하면 미국 큰 도시에서는 마치 미국법에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택시 운전사가 될 수 없다고 정해지기나 한 것처럼 대부분의 택시운전사들은 외국 태생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평화봉사단 시절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봉사단원 중에 한국사람이 되기 위해 무척 노력하였던 사람이 있다. 그 친구는 한복을 입고,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였다. 한번은 그가 부산에서 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친구가 미국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장님은 "당신 말씨가 이 지방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서울에서 왔군요?" 하고 물었을 정도였다. 한국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인 피를 타고나야 한다는 법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는 한국사람 피를 수혈하기까지 하였다. 아마 그 친구는 지금까지 한국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직도 한국 국민이 되지 못한 채 외국인으로서 살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한국에 있는 모 대학교에서 교환교수로 있을 적이다. 교수 회의나 학교 행사에 참여하면서 다른 교수들과 섞여 보려고 노력하였지만 결국 나는 외국인이었다. 남자 교수들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여자 교수들에게 또 다른 기준이 있고, 외국인인 나에 대한 기준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다른 교수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많은 자유가 있어서 나는 한국 교수들과 다른 북소리에 맞추어 마음대로 걸어도 되었다. 그러나 다른 교수들처럼 조직에서 진정한 의미의 한식구가 될 수가 없었다.
한번은 월급명세서를 들여다보면서 공제한 항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옆에 있는 동료에게 물었더니 퇴직금을 뗀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신이 나서 "그럼 나도 언젠가는 이 돈을 돌려 받겠구나" 하면서 좋아하였다. 그 동료는 "그 돈은 한국사람에게만 해당한다"라고 설명하였다."그러면 왜 공제를 하는가?" 하고 물었더니 "법이다라고 말할 뿐 설명을 하지 못하였다.
한국은 미국사람들에게 앞문을 열어 맞이하여 주지만, 집안으로 완전히 들어갈 수가 없다. 신문 기사에 실린, 한국을 알고자 하는 그 미국인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한국법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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