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김의 귀거래사

2002-11-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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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 이야기만 나와도 이젠 신물이 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김대중(DJ), 김영삼(YS), 김종필(JP)-하기야 이들을 키워 준 ‘고향 사람들’도 옛날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으니 알만하지 않은가. “30년 한을 풀어 준” DJ의 집권 성공에 눈물을 글썽이던 호남의 순박한 이들도 이젠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 괄괄한 성격의 경상도 사람들은 대놓고 YS를 욕한다. “나라 겡제(경제) 다 결딴내지 않았능교?” 좀처럼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 충청민심도 JP를 떠났다. “또 다른데 붙을랴는 개벼…” 권력의 단물만 빨아온 과거를 넌지시 나무라는 말이다.
3김--이 나라 40년 헌정사를 이런 저런 사연들로 장식해 온 정치 기린아들. 그 중 두 사람은 꿈에도 그리던 청와대 내실을 접수했고, 또 한 사람은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국무총리)의 영화를 두 번이나 누렸다. 그리고 목하 또 다시 ‘킹 메이커’가 되겠노라며 8순의 노욕을 불사르고 있다.
딱히 JP뿐이겠는가. 이미 정상을 차지한 DJ나 YS의 노욕도 만만치는 않다. 2003년 2월25일 자정 12시면 그 영화롭던 청와대 시절을 마감해야 하는 DJ로선 집권 5년이란 세월이 그리도 빨리 지나갔는가, 아쉬움이 클 것이다.
사실 그에겐 또 다른 꿈이 있었다. “남북 연방제에 의한 초대 대통령”--아마도 DJ는 가슴속에 그런 꿈을 간직해 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더 이상 그의 편이 아니었다. 회심의 대북 브랜드인 햇볕정책은 국내외로부터 도전을 받았다. 부시가 백악관을 장악한 것도 그에겐 불운이었다. 게다가 두터운 은전을 입은 북의 김정일이 저토록 비협조적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서해교전은 뭐며, 핵을 개발하고 있다고 이실직고할 것은 뭐란 말인가. 아마도 요즘 DJ는 김정일에게 꾀나 섭섭한 마음을 갖고 있을 성싶다.
하지만 DJ의 장기는 집요함에 있다. 웬만한 일에 좌절하지 않는다. 퇴임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다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하여, 그리고 권력형비리 사건으로 감옥에 간 두 아들을 위해서도. 민주당 노무현,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두 후보의 단일화를 막후에서 조정 중이라는 의혹이 나돌면서 DJ의 미몽에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그 미몽의 또 한 자락에 ‘아태평화재단’이라는 조직의 실체가 서있다. 퇴임 후를 고려해 둘째 아들을 내세워 막대한 기부금을 모아 세운 ‘김대중 연구소‘다.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자 연구소를 연세대에 기증한다는 방침을 슬쩍 흘렸지만 오너는 ‘DJ 그대로’라는 비난이 일어 주춤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나는 DJ가 국민들에게 소개한 소박한 약속을 상기하고 싶다. 지난 98년 1월, 취임을 코앞에 두고 출간한 ‘역사와 더불어’라는 회고록에서 DJ는 ‘작은 소망’을 밝힌 바 있다. “나는 하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자라 바다를 유난히 좋아했다. 만약 나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준다면 넓은 바다가 보이는 작은 언덕에 아담한 기와집 한 채를 짓고 거기서 사는 것이다.”
그렇다. DJ는 이제 그 소망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반세기의 영욕을 정치사에 묻고 혼탁한 서울을 떠나 그가 소년시절 그리던 마음의 고향인 바다 곁으로 떠나야 한다. 자신의 참된 마음을 곡해한 반대자들이 왜 밉지 않겠는가. 또 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인들 왜 없겠는가. 하나 누구에게나 때가 있는 법, 이제 역사는 DJ시대의 종언을 예고하고 있다. 전임자들처럼 주춤댔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작은 박수라도 받을 때 이 풍진 세상을 떠나는 것이 현명하다.
DJ라면 대결과 반목을 일상처럼 해온 YS. 퇴임 후 DJ와는 대면조차 거부해 왔고, ‘출세를 보장해 준’ 이회창 후보가 의리를 지키지 않는다고 한나라당을 흔들어대는 심술도 곧잘 부렸다. YS는 어떤 기록에서도 고향 거제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다. 그래선지 퇴임 후 줄곧 상도동 사저에 머물면서 정치인들을 불려들여 훈수도 두고 그들 입을 통해 미운 놈 욕도 해 왔다. 하지만 어느 국민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까. 신뢰와 존경은 이미 무너졌다. “종일 수영하느라 소년 김영삼의 얼굴을 까맣게 태운”(회고록) 저 거제의 바다가 그를 부르고 있다.
JP--이 정치거물은 자민련 의원들이 탈당 움직임을 보이자 이렇게 뇌까렸다. “갈 사람은 가시오. 권력을 좇아 몰려다니는 그런 자들은 정치인이 아니오. 정객이라고 해요.” 이럴 때 사돈 남 말한다고 하는가. 또 이런 말도 했다. “이 JP는 죽지 않아요. 서녘 하늘을 벌겋게 물들일 겁니다.” 노을이 버틸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낙조와 더불어 곧 어둠이 찾아오는 게 자연의 이치거늘.
이제 그들 모두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질 시간을 맞고 있다. 하의도로, 거제로, 그리고 부여로 물러가 낙조를 안타까워하지 말고 곧 찾아올 여명을 찬탄하는 관조의 삶으로 돌아갈 시간 말이다. 역사의 의미를 묘한 말로 다시 희롱한다면 3김이 그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는 불문가지다.
안영모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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