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포 속의 삶

2002-10-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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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일대 저격사건의 주 타겟 지역에 나의 친구가 살고 있다. 그는 두 아이의 엄마인 47세의 기혼 여성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포로 얼룩진 지역에서 평범한 일상적 삶이 얼마나 이상해 질 수 있는 지를 느낄 수 있다.
내 친구는 워싱턴 시경계를 바로 건너 메릴랜드주 몽고메리 카운티에 산다. 거기서 5명이 죽었다. 지난 토요일 그가 남편과 함께 식당에 있을 때 웨이터가 와서 또 저격사건이 있었다는 말을 했다. 이번에는 버지니아주 리치몬드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의 친구는 남편에게 지금 당장 자동차를 타고 볼일을 보고, 시장을 보고 그리고 개솔린을 넣자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저격수가 거기서 90마일 떨어진 리치몬드에서 누군가를 쏘았으니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라는 논리였다.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순간적 충동이 전혀 비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미국 스타일의 개방된 민주주의에서 일상의 삶이란 폭력의 독재 앞에서 휴지조각처럼 힘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을 보고 개솔린을 넣는 따위의 일을 하는데 전투에 임하는 듯한 두려움과 방어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학교들은 완전히 봉쇄작전에 돌입했었다. 아이들은 노는 시간에도 절대 밖에 나가지 않고 허가된 사람 외에는 누구도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내 친구의 딸은 중학교 축구팀에 들어있는데 운동장에서 해야 할 연습을 학교 실내체육관에서 했다고 한다. 운동팀들이 모두 실내로 들어와 바글대니 운동이 아니라 새장에 갇힌 형국이었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이 신경과민이었다. 위험할까봐 걸음을 똑바로 걷지 않고 지그재그로 걷는 사람들 이야기도 있었다. 저격수 수색으로 인해 생긴 엄청난 교통체증도 대부분 주민들이 이해는 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더 공포심과 좌절감이 깊어지기도 했다.
어제 아침에 보니 내 친구의 자동차에는 개솔린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더 이상 주유를 미룰 수가 없게 되자 그는 몽고메리 카운티 경계를 건너 DC 내의 주유소까지 운전을 해갔다. 거기서는 총격사건이 한 건밖에 안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내 친구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개솔린 펌프로 가서 주입구를 집어 넣자마자 차안으로 들어가 기다렸다. 모두가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밥 허버트/뉴욕타임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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