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한에 더 이상 ‘당근’은 안 된다

2002-10-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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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북한이 이제서야 핵무기 개발 비밀 프로그램을 시인했다. 분석가들은 지난 수년동안 북한이 1-2개의 핵무기를 생산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북한이 향후 1년 정도면 매년 6개까지의 핵무기를 생산할 능력을 보유할 수 있다는 믿을만한 보도들이 있다.
북한지도부는 주민은 굶주리게 하면서도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군대를 갖고 있으며 경제는 파탄지경에 빠트렸다. 그들은 국제미사일규제체제를 어기면서까지 미사일 기술을 수출해 외화를 벌고 있다. 이는 장차 핵탄두의 확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매우 위험하고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1994년 미국과 북한사이에 체결된 제네바 협정의 문제점은 이미 예견됐던 것이다.
북한정부는 힘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힘밖에 모른다. 제네바 협정을 체결한 것은 미국이 북한의 으름장에 고개를 숙인 것이다. 북한은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했다. 이 이 조약에 따르면 북한은 18개월 내 국제원자력기구와 안전협약을 체결해야 하고 영변의 핵 시설에 대한 사찰을 허용했어야 했다. 그러나 북한 은밀히 핵 개발 프로그램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전임 부시 행정부는 6년간의 끈질긴 외교적 압력을 행사해 지난 91년 12월 26일 북한으로 하여금 핵사찰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이듬해 1월 회담에서 미국은 국제협약을 준수하지 않으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할 것이라는 엄중하게 경고했다.
북한은 자신이 서명한 국제규약을 준수하지 않았고 클린턴 행정부로 정권이 교체되자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떠들었다. 이 때가 바로 클린턴 행정부가 제네바 협정에 조인한 시점이다. 클린턴은 이 협정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실지로 우리의 채찍과 당근 정책이 당근정책으로 변한 것뿐이다.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약속 받은 북한은 지난 91년 합의한 핵사찰에 응하도록 5년간의 여유시한을 받았다.
그러나 이 같은 변덕스런 미국의 정책은 오히려 한반도의 안정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북한이 제네바 협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 외에 이란이나 이라크와 같은 나라들에게 “조약을 어겨도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해주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북한의 위협에 굴복하지 말고 유엔안보리에 북한의 국제조약 위반을 공표하고, 지난 90년 이라크에 대해 가한 것과 유사한 정치 및 경제제재를 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남한의 안보를 강화하는 한편, 북한에게는 과거 유럽에서 ‘핵우산’으로 소련의 위협에 맞선 것처럼 미국은 남한과 일본을 보호할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나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정치 경제적 제재조치에 대해 유엔안보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획득할 것으로 믿는다. 러시아나 중국을 포함해 상임이사국 누구도 북한의 핵무장을 원치 않는다. 미국은 러시아, 중국은 물론 남한, 일본과 사전에 적절한 대화를 가졌다. 이는 매우 적절한 행동이었다. 우리는 핵확산금지에 노력했다지만 지난 8년을 허비했다. 하지만 지난 94년 우리가 취했어야 할 정책을 지금이라도 취하면 되는 것이다.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
워싱턴포스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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