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목표는‘흥행 대박’

2002-10-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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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 프로듀서 패트릭 최씨가 밝힌 할리웃 영화 제작과정

▶ 자금조달서 개봉까지 1년6개월…기나긴 고행길



-커버스토리 -
이탈리아의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에 살던 소년 또또는 시네마 파라디소에서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입맞추는 장면을 보며 꿈을 꾼다. 인도의 델리에서 만난 오토 릭샤 왈러 푸란은 한달에 고작 600루피(약 120달러)를 벌지만 가족과 함께 주말에 영화를 보느라 수입의 적지 않은 부분을 쓰는 것을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 ‘꿈의 공장’ 할리웃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 한편의 영화가 탄생되는 걸까. 영화의 잉태에서부터 해산까지의 과정을 가까이 들여다보기 위해 할리웃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인 프로듀서 패트릭 최씨를 만나봤다. 키아누 리브즈 주연의 ‘워처(Watcher)’를 비롯해 모두 열두편의 영화를 제작한 바 있는 그가 영상 사업에 뛰어든 것은 13년전의 일이다. 아무리 영화를 잘 만들어 놓아도 팔리지 않으면 말짱 헛일. 영화계에 진출했던 첫 6년간을 해외 배급업에 종사했던 덕에 그는 영상 산업에 있어 가장 현실적인 부분들을 탄탄히 배울 수 있었다. 할리웃은 물론이고 영화의 제작 과정은 크게 ‘프리 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 세부분으로 나뉜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 이전을 ‘디벨로프먼트(Development)’ 단계라고 한다.



디벨로프먼트
제작비 조달은 자신의 돈으로 하거나 투자자를 모으기도 하고 담보를 잡히고 은행에서 융자를 받기도 한다. 다른 나라에서 지금 제작하려는 영화가 완성되면 구입하겠다는 내용이 명시된 계약서가 있을 경우에는 별다른 담보 없이도 융자가 쉽게 나온다.
제작비를 형성하는 이 과정은 멋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잊어버리고 싶어할 정도로 아주 길고 어렵다.
각본이 독특하고 뛰어난 경우 흥행이 보장된 A급 배우들이 출연을 수락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좋은 감독도 덩달아 계약이 성사되고 제작비를 대겠다는 은행이 줄을 서게 되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배우 한 명에게 출연 제의를 한 후 그 배우가 답을 줄 때까지 기다린 후 다음 후보에게 제의를 하는 식이다. 캐스팅 과정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모된다. 짧게는 2~3주에 모든 배역이 결정되기도 하지만, 많은 배우가 출연 제의를 거절한 경우, 몇 달을 그냥 흘러버리기도 한다.
이제껏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었던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배우들은 의외로 적극적이다. 때로 유능한 감독이 연출할 가능성이 겨자씨만큼 밖에 없어도 이미 계약이 거반 다 된 것처럼 행세할 때도 있다. 정치적인 게임을 해야 되는 단계라고 할까. 동시에 각본을 좀 더 완벽하게 배우와 감독에 맞춰 수정하는 작업도 이 단계에서 마친다.
주연 배우는 이미 선정이 됐을 터이니 그 밖의 조연배우와 단역, 엑스트라까지 캐스팅하고 촬영과 조명 등 프로덕션 전반을 담당할 프로덕션 회사를 선정한다. 적어도 100~200명의 인원이 동원되는 작업이니 거의 하나의 회사를 차린다고 봐도 되겠다. 도대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막막해 보이지만 라인 프로듀서(제작부장)가 결정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그가 평소에 잘 알고 있는 제작 사단들을 알아서 결정해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동시에 제작비를 융자해 준 은행이 안심할 수 있도록 보험도 들어주어야 한다.


직접적인 영화 촬영과 거의 관련이 없어 보이는 디벨로프먼트의 단계를 거치고 나면 드디어 프리 프로덕션으로 들어간다. 라인 프로듀서는 각본과 감독, 배우의 스케줄을 모두 고려해 프로덕션 스케줄을 잡는다. 로케이션과 최종 예산액도 결정한다. 프로덕션 스케줄은 매일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찍을까하는 아주 구체적인 제작 청사진.
영화가 다 끝나고 나면 5분은 족히 흐르는 이름들의 주인공, 즉 사무실 임대, 촬영 장소의 음식 배달 서비스, 어카운팅 서비스, 헤어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빛도 없이 영화를 빛내주는 이들이 이 때 모두 선발된다.


프리프로덕션 단계가 워낙 길고 세세하다보니 실제 프로덕션 단계는 의외로 단순하고 순조롭다. 저예산 영화의 경우 5~6주 정도, 높은 예산을 들인 영화라 하더라도 10주 정도면 대부분의 촬영, 즉 프로덕션은 마쳐진다. 프로덕션 스케줄에 따라 강행군을 하게 되는데 감독이 이에 잘 따라주지 않거나 갑자기 배우에게 사고가 나는 이변이 생기면 장면을 바꾸는 등의 조정을 해야 한다.


포스트 프로덕션
그 다음은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 약 3~5개월 정도의 기간에 편집을 해가며 보충 촬영을 하고 사운드 이펙트, 녹음, 특수효과를 더하면 이제 영화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 완성된다. 예산에 여유가 있으면 테스트 스크리닝을 실시한다. 타겟 대상들을 선정해 영화를 보여주고 어떤 면이 고쳐져야 할까 설문 조사를 한다.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서 가장 좋은 장면들을 골라 프로모션 테이프를 제작해 국제 영화제나 영화 마켓에서 판매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세일이 되면 제작비를 융자해 준 은행에 돈을 갚는다
이제 극장에서의 상영을 준비하기 위해 프린트를 뜨고 영화 포스터도 제작한다. 패트릭 최씨가 제작했던 ‘워처’의 경우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배급을 맡아 2,900개의 개봉관에서 상영을 했다. 이 영화는 2000년 개봉 당시 2주 동안 박스 오피스 흥행 1위를 달렸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프로듀서가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의 씨앗으로부터 실제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대개 1년에서 1년 반이다. 파이낸싱과 배우 캐스팅하는 단계는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될 것처럼 희망에 사로잡혔다가도 영화에의 꿈을 포기할 정도로 좌절하기를 왔다 갔다 한다. 이 길고 지루한 기간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마음 고생이 많지만 수입은 좋지 않느냐는 질문에 패트릭 최씨는 “그저 1년에 영화 한 편 제작해 7자리 숫자의 인컴을 벌어들인다”고만 답한다.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했던 ‘메이트릭스’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이담에 삶의 기쁨을 전하며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를 비롯한 한인 영화 제작자들이 더욱 활발히 활동해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영상으로 빛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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