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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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감상법

2002-10-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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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2월 19일, 한국 유권자들은 5년 간 나라를 이끌어나갈 새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겨우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코앞의 시간이다. 한데 대선 판도는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유력 후보 군은 어느 때보다 단출하다.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무소속 정몽준, 이렇게 셋으로 정립해 있다.
대선 판이 아직도 정돈이 안 된 채 안개 속을 헤매는 이유는 집권 민주당 내가 이만 저만 복잡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DJ)이 탈당했으므로 집권 여당이 아니라고 애써 변명하고는 있지만 민주당이 집권 세력들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집권당이라는 민주당이 시속 말로 ‘콩가루 집안’이 됐다.
‘헌정사 최초로 국민 경선’이라며 야단법석을 떨면서 노무현이라는 ‘무명의 정치인’을 후보로 선택하더니 이제 와선 “당신 가지고는 이길 수 없으니 말에서 냉큼 내려 오라”고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에 비상이 걸린 이유는 분명 있다. 올 초 여름까지만 해도 ‘노무현 바람(노풍)’은 기세 좋게 불었다. 한데 그 인기도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주저앉았다. 한 원로 정치인이 논평했듯이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손에 시한 폭탄을 갖고 있는 듯 불안하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스며든 탓이다.
3후보의 인기도가 이회창-정몽준-노무현 순으로, 그것도 정몽준과 비교해서는 절반 차이로 벌어졌으니 민주당 내에 사이렌이 울릴 만도 했다. ‘노무현 필패론’은 이제 정설로 굳었고, 말로는 “백지에서 대선 후보를 다시 뽑자”고는 하지만 내심은 정몽준을 향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 내 교통정리가 끝나지 않는 한 대선 판도 뒤죽박죽인 채로 흘러갈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결판이 날까, 이 것이 한국 대선의 첫 번째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 내 경선이 한창일 때 선두를 달리던 이인제가 돌연 경선 도중하차를 선언하며 내뱉은 말이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이 배신적 정치 쇼에 들러리를 설 생각이 없다.” ‘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의 손인가. 그게 DJ의 손, 그 뒤에 숨어있는 박지원 비서실장의 손이라는 것은 이미 이인제 캠프에 파다하게 나돈 이야기다. 다시 말해서 DJ의 정치적 욕망과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영향력 행사는 멈추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인제 측 주장대로 “경선을 요리했다”는 이 ‘보이지 않는 손’은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민주당 내 한 인사는 이렇게 단언한다. “그거야 뻔하지 않은가. 선거 막판, 그러니까 11월 중순쯤이면 단일후보가 등장할 것이다. 노무현과 정몽준의 인기도를 저울질한 뒤 확실히 앞선 쪽 손을 들어 주면 된다. 그것도 아주 극적으로.”
이 예측이야말로 이번 대선 판의 핵심이다. 지금 집권세력들의 심정은 좌불안석이다. 야당 생활 40년만에 쟁취한 권력이 이처럼 꿀맛인지 미처 몰랐다는 아쉬움과 함께 이회창이 집권하면 밤잠이나 제대로 잘까하는 걱정이 태산이다. 재집권 욕망에 불타 있다는 뜻이다. 한나라당 쪽에선 “흥, 지은 죄들이 있으니까 우리가 집권하는 게 겁도 나겠지”하고 단단히 벼르는 품새다. 양 진영의 반응은 그대로 대선 판을 읽는 키워드다. 바로 이회창 대(VS) 반 이회창의 구도다. 5년 전과 똑 같은 선거 양상이다.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 작업도 결국은 이회창을 꺾기 위한 반 이회창 세력의 총집결이요 궐기인 셈이다. “저 대쪽에게 청와대를 넘겨주었다가는 줄 초상난다”고들 수군대며 현재 인기가 곤두박질 친 노무현을 말에서 내려오라고 법석을 떠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회창 지지 세력은 물론 그 반대쪽에 선 사람들이다. ‘김대중’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반 DJ 층이다.
지역적 대결구도도 변한 게 없다. 호남 대 영남의 쏠림 현상은 여전하다. 호남의 경우 민주당 경선 때는 노무현을, 지금은 정몽준을 지지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 크다. ‘보이지 않는 손’의 움직임을 예측케 하는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 내 반 노무현파들은 정몽준이 단일후보로 나설 경우 이회창을 확실히 비트할 수 있다는 여론조사에 고무되고 있다. 한데 요즘 또 고민이 생겼다. DJ가 현대그룹을 통해 뒷돈을 주고 김정일과 만났다는 의혹이 터지면서 정몽준에게도 여론의 눈총이 곱지 않은 탓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선거 막판까지 기다려야 할 충분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JP(김종필)의 변수가 기다린다. “어휴 그 노인이 또 나타나나?”하고 입맛들을 다시지만 정치는 추악한 현실이다. 충청도 표심의 일부를 움켜쥐고 있는 그가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당락이 결판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 한나라당 대선 기획단이 JP와의 연대를 이회창에게 건의했다는 뉴스이다. 그러나 JP는 침묵으로써 몸값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가 붙는 쪽에 승리의 여신이 또 다시 미소짓고 있다면 그것은 한국 정치의 희극이요 비극이다.
안영모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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