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외교 정책의 대변화

2002-10-0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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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간 미국 내 국제주의자들은 공산주의 몰락 후 일관된 외교 정책 부재를 개탄해왔다. 클린턴 행정부는 위기가 닥치면 그제서야 임기응변 식으로 대응, 유일한 수퍼파워로서 미국의 위치를 활용하지 못하고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부시 행정부가 새로운 국가 안보 독트린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34 페이지에 걸친 이 독트린은 90년대 미 외교 정책이 갖추지 못한 점을 모두 담고 있다.
이 문서는 미국이 유일의 수퍼파워로서 전례 없는 힘을 갖고 있으며 세계 질서를 잡는데 이 힘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지금 세상은 냉전 시대와는 전혀 다르며 미국은 어떤 면에서 구 소련보다 더 큰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 독트린은 미국으로 하여금 자유를 진작하기 위한 힘의 균형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도록 하고 있다. 90년 대 꺼려오던 해외 문제 개입에 나설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여기에는 단지 잭슨 식 미국의 이익 추구뿐만 아니라 윌슨 식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자유 무역을 전 세계에 보급’ 하겠다는 생각에 키신저 식 힘의 균형 전략까지 깔려 있다. 미국의 영향력을 ‘평화와 번영, 자유의 시대’를 이룩하겠다는 데 쓰겠다는 것이다. 잘만 되면 이 이론을 펴낸 콘돌리자 라이스는 새 시대를 대표하는 정책입안가로 기억될 것이다.
라이스가 뭔가 큰 일을 했다는 첫 증거는 이번 발표에 대한 거센 비판이다. 외교 가에서는 이번 발표를 독일식 기습을 정당화한 전례 없는 정책 변화라고 펄펄 뛰고 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은 과거에도 일방적인 선제 공격을 해왔다. 파나마나 그리네이다, 하 이티 등이 그 예다.
새 이론의 요점은 테러리스트와 깡패 국가들이 대량살상 무기를 이용해 미국에 엄청난 해를 가할 수 있는데 당할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새 독트린에 반대하는 것은 리버럴 학자들만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 내에서도 이를 전적으로 신봉하는 것은 라이스뿐이다.
조지 케넌의 억지 정책은 좌우의 반대에도 불구, 냉전의 대표적 독트린으로 자리를 굳혔다. 라이스의 이론도 같은 길을 걷게될 것인가. 부시 대통령 본인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주창되고 있는 독트린의 중차대함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잭슨 딜/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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