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면도가 범죄행위인가

2002-09-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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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탑승자가 승무원을 공격하거나 위협함으로써 승무원의 업무 수행을 방해할 경우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연방법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 법을 기안한 사람들이 ‘위협’이라는 말을 쓸 때 면도를 한다거나 화장실에서 너무 오래 있는 따위의 행위들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9.11 테러 발생 1주년이 되던 지난 11일 멤피스에서 라스 베가스로 가던 노스웨스트 항공 소속 비행기에서 거디프 원더라는 남성이 면도를 중단하고 속히 자리로 돌아가라는 승무원의 요청을 무시한 죄로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기장이 비행기를 아카소에 비상착륙시키며 과민반응을 보인 사건 자체는 테러 1주년이 되는 날 경계심이 지나치다 보니 일어난 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더씨를 승무원 위협 혐의로 기소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원더씨, 그리고 같이 여행하던 하린더 싱씨는 둘 다 시크교도로 알카에다 세포들이나 테러조직들과 전혀 연관이 없는 것으로 수사결과 드러났다. 라스베가스의 컨벤션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그 전날 비행기가 연착, 미네아폴리스에서 갈아탈 비행기를 놓치면서 항공사측이 제공해준 면도기 세트만 가지고 호텔에서 묵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멤피스로 가서 문제의 비행기를 탔는데 불행히도 히스패닉 남성이 옆좌석에 앉으면서 승무원들은 이들 까무잡잡한 피부의 세 남성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원더씨가 ‘안전벨트를 매라’는 사인이 나온 후에 승무원의 양해를 구한후 화장실로 향했고 그 안에서 승무원이 여러번 자리로 돌아가라는 요청을 했는데도 계속 남아있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게다가 그가 자리로 돌아간 후 옆자리에 앉았던 두 남성이 계속 화장실을 사용하려 하자 기장은 비상착륙 결정을 내렸고 세 남성은 구속되었다.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는 사람들이 의심이 많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해가 밝혀지면 사태를 정상으로 돌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원더씨 사건이 특히 볼썽 사나운 것은 그가 분명 테러리스트가 아닌데도 그를 테러리스트처럼 기소하는 것이다. 면도는 9월11일 비행기 안에서 했다 해도 결코 범죄가 아니다.
<워싱턴 포스트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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