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퍼파워가 져야할 짐

2002-09-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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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사태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사람들의 첫 반응은 경악이었다. 어떻게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지, 그걸 보고 길거리에 나와 춤추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지 미국과 서방 세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9·11 테러를 저지른 동기는 물론 증오다. 그들은 왜 우리를 그토록 미워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잘못 했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힘이 있고 성공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신출내기 미국에게 추월 당했다고 생각하는 유럽에게서도 때로는 질투 섞인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보다 깊고 강렬하게 느끼는 것은 회교권이다. 대다수 회교도들은 미국인과는 달리 역사 의식이 강하다.

그들이 보기에 현실은 대단히 비극적이다. 수백 년 동안 회교권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하며 모든 분야에서 창조적인 문명이었다. 그들의 군대와 교사, 상인들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 유럽 각지에 이르기까지 뻗어나가며 우월한 문명을 전파했다. 그러던 것이 근대에 들어 상황이 역전됐다. 기독교 문명을 침략하고 지배하던 회교도들이 거꾸로 침략 당하고 지배받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이 잘못된 데 대한 분노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자라오다 이제 절정에 이른 것이다.


이 분노의 제일 타겟은 물론 우리가 자유 세계라 부르고 그들이 이교도라 부르는 서방의 지도자인 미국이다. 오랫동안 아랍을 비롯한 제3세계 지도자들은 영국과 프랑스, 미국과 소련 등 양대 세력을 저울질하며 잇속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 종식과 함께 이것이 불가능해졌다. 일부 아랍 지도자들은 소련을 대체할 세력을 유럽에서 찾았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오사마 빈 라덴 등 다른 세력의 상황 판단은 달랐다. 그들이 보기에 소련이 무너진 것은 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펼친 성전의 결과였다. 그들은 2개 수퍼파워 중 더 의지가 굳고 인정사정 없으며 위험한 상대와 싸워 자신들이 승리한 것이다. 유약한 미국쯤이야 별 상대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들이 미국을 경멸하는 것은 미국적 생활 방식의 부도덕성과 타락성이다. 이런 가치관이 회교 사회를 타락시킬까 겁을 낸 것이다.

이들은 미국 같이 쾌락주의에 빠진 나라가 자신들과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월남과 베이루트, 소말리아 사태가 이같은 생각을 뒷받침했다. 93년 월드트레이드 센터 폭파, 동아프리카 대사관 폭파, USS 코울 폭파 사건 등이 연달아 일어났는데도 별 달느 대응이 없는 것도 이들을 부추겼다. 9·11 사태는 미국을 아라비아 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한 작전의 서곡이었다.

아프간에서 미국이 보여준 단호함은 그들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유약함과 자포자기를 미국의 특징으로 여기던 종전 사고방식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다시는 그들이 민주주의를 우유부단으로 오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버나드 루이스/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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