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부가 나서 될 일 아니다

2002-07-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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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레스터 서로우/뉴욕타임스 기고

새로운 규제로 일련의 기업비리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미국자본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엔론, 월드컴, 타이고 등은 ‘기본적으로 건전한 시스템’에서는 비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스캔들은 자본주의에 따라다니는 것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은 피해를 억제하는 것이고 개인 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책은 해로운 일을 피하는 것 이다.

어제 주가가 요동을 치다가 끝내 235포인트 밀린 것은 바로 기업의 회계비리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상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캔들로부터 증시가 살아날 기력이 있는지에 대한 회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호황 말기에는 더 큰 기대가 압력으로 작용한다. 기업들은 월가 분석가들이 내놓는 예상치에 실적을 맞춰야 한다. 그러다 보니 판매담당자들은 더 높은 판매고를 올려야 한다.


처음에는 조금씩 수치를 높여 잡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수치가 한층 높게 부풀려 진다. 그렇지 않으면 무능하다는 이유로 해고되기 마련이다. 그런 분위기다.
한 조직뿐 아니라 조직의 구성원 모두가 이 같은 압력에 반응하게 되고 모두들 보다 향상된 수치에만 매달린다. 과도하게 책정된 기대치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호시절은 이제 끝났다고 주장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도 드물다.

회계법인 등의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자고 주장하는 정치인은 이미 끝나버린 전쟁을 하는 장군과 다름없다. 스캔들이 터진 뒤 이의 재발을 막기 위해 만든 규제는 적어도 재정문제에 관한 한 쓸모 없는 것이다. 지난 80년대 세이빙스&론 문제가 터진 뒤 사기와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규제는 이번에 발생한 기업회계 비리를 전혀 방지하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스캔들이 불가피하다면 소액 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언제든 사기를 당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월가의 기관투자자, 기업경영진 등과 같이 고급정보에 한발 가까이 서 있는 사람들과 공평한 경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그렇게 돼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비리와 부정을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규제법을 만들었다고 해서 마치 모두가 공평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부정직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최대의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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