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웬디 셔먼(클린턴 행정부 대북한 특사)/뉴욕타임스 기고
사담 후세인과 김정일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소위 ‘악의 축’이란 점에서 그런 게 아니라 ‘예’란 긍정적인 답변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랍국들이 권유한 유엔 사찰 팀을 받아들이지 않는 후세인이나, 서해교전을 촉발해 북미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김정일은 비슷하다.
이들 두 사람은 외국인 또는 국내 폭동으로 인해 자신의 권좌가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김정일의 주목표는 정권유지이다. 문명세계에 기웃거리는 것은 충분한 경화를 확보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속셈이다. 후세인도 다르지 않다.
자국민을 억압하면서 국제사회에 위협적인 존재인 이들 지도자들을 미국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그저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과 달리하기만 하면 되는가. 미국은 동북아시아와 중동에 안보이익을 갖고 있다. 테러리즘을 근절하고 민주우방국들을 보호하며 대량살상 무기의 확산을 막는 일이 걸려 있다. 단순히 미사일에만 의지할 게 아니라 다양한 외교정책을 구사하는 포괄적인 접근법이 요구된다.
미국은 이라크에 대해 군사행동을 감행하려 하지만 아랍권은 물론 유럽에서도 반대가 만만치 않다. 만일 후세인을 쫓아낸다 해도 차기 정권의 성격 등 주요 이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이 해당 지역과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자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인상만 주고 있다. 이 사안을 공론화해야 한다. 유럽 우방들과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야 하고 국내에서도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
한편 북한 문제에 있어서 클린턴 행정부는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정권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클린턴 행정부는 지역 및 미국의 안보를 위해 일본, 한국과 협력하여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부시행정부는 이러한 정책에 시큰둥하고 있다. 한국, 일본,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해 주는 대신 핵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한다는 1994년 제네바 협정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보좌관들이 부시 곁에는 득실거린다. 부시 행정부는 대신 올 가을 의회선거와 12월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까지 대북한 정책 수립을 미루어 놓은 상태다.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북한은 서해교전을 일으켜 대화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김정일은 서울을 방문하고, 이산가족면회소를 설치하며 경의선 연결사업을 본격 추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올해 내에는 그럴 것 같지 않다. 조만간 미국은 북한과 대화재개 기회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로 하여금 북한에게 위험한 행동을 삼갈 것을 촉구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한국과 긴밀한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다. 한국대선 후 정권이 바뀌더라도 평화적인 대화정책의 골간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미국은 기존 협정을 존중해야 한다. 북한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북한의 임산부와 어린이, 노약자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식량지원을 지속해야 한다.
절묘한 방안은 없다. 군사행동이 해결책은 아니다. 북한을 고립시키거나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다. 이런 방법 하나가 문제를 해결하고 독재자를 쫓아내는 길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행동을 감행한 미국이지만 탈레반을 지하로 도망가게 한 것 외에는 특별한 성과를 꼽기 어렵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아직도 평화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시가 해야 할 일은 매우 명료한 외교정책이다. 명료한 정책을 수립하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이 정책을 집행해야 외교적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