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For Koreans Only

2002-07-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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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이렇습니다

▶ <교육학 박사>

아쉽게도 내가 사는 도시에는 한국 식품가게가 없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오클랜드에 사는 아들을 방문할 적마다 텔레그래프 애비뉴에 있는 한국 가게에 들리곤 한다. 며칠 전에 오랜만에 만난 우리식구 네 명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간장, 참기름, 쌀, 김치 등을 사기 위해 한국가게에 갔다.

한국식품점으로 가는 차안에서 우리는 월드컵이야기, 한국팀의 승리를 이야기 하다가 한국식품가게에서 월드컵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토요다 캠리 경품권을 고객에게 준다고 아들이 말했다. 한국이 월드컵을 따면 메세드 벤츠가 상품이 될 것이라는 말을 가게 점원에게서 들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평소처럼 장보기를 끝마치고 나는 카운터에서 물건값을 치르기 위해 기다리고, 아내는 출입구 근처에 진열하여 놓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 가게는 50달러 이상 어치의 물건을 사면 출입구에 놓인 물건들 중에 하나 골라가라고 한다.


계산을 마치고 봉지를 들고 나오는데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가 나에게 경품권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받지 않았다고 하니까, 아내는 점원에게 경품권을 왜 주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점원은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한국사람에게만 준다”라고 하였다.

나는 점원의 대답이 재미있어 처음에는 웃었다. 그런데 나의 반응과 달리 아내는 얼굴색이 변하면서 아주 진지하게 “나도 한국사람인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면서 점원에게 항의하였다. 점원은 얼른 경품권을 꺼내서 아내에게 주었다. 계산을 치르는 사람이 ‘외국인’이었기에 주지 않았다고 변명하였다.

경품권에 이름과 주소를 쓰고있는 아내의 어깨 너머로 보니까 신청서는 한국말로 되어있었다. 관심을 가지고 다시 가게를 둘러보았다. 차를 경품한다는 광고는 한국말로만 되어 있어 한국사람이 아닌 고객은 차를 경품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나칠 것이 분명하였다.

복권 추첨권을 “한국사람에게만 준다”는 사실을 알고, 아들은 “어제 일하던 점원은 나에게 경품권을 주었다”하니까, 작은아들이 “형은 눈이 작아서 한국사람으로 생각했나봐”하면서 경품권을 받지 못한 자기의 빈손을 보였다. 한국사람에게만 해당한다는 설명을 들은 제커리는 “만약에 내 표가 뽑히면, 내가 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표를 없애 버릴 것”이라고 단정하며 한국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후회하였다.

‘차별’이 우리들의 귀가길의 화제가 되었다. 평소에 잔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아내가 시시한 경품권을 가지고 분개하는 것이 처음에는 이상하였다. 특히 차별 당한 당사자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는데 아내는 한참동안 분노하며 기분이 상해 있었다. 아내의 분노의 원인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월드컵 경품당첨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한국사람에게만 해당한다”하는 가게의 방침을 점원에게서 들었을 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Korean only’ ‘American only’ 라는 독침의 쓴 기억이 생각나서 자신도 모르게 분노하였다고 아내는 고백하였다.

오래 전의 이야기인데, 아내는 미국사람인 나와 결혼하였기에 한국사람들로부터 차별을 받은 불쾌한 기억으로 한국사람들을 피하면서 살았던 때가 있었다. 미국인과 결혼하였다는 이유로 그녀는 직장을 잃기도 하였고, 친지들 중에는 창피하다고 아내와의 관계를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가 결혼한 사람이 한국사람이 아니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이민 초기에 아내는 나의 친지들로부터도 차별의 독침을 받은 적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애를 쓰면서 “한국 사람들이 차별에 대해서는 더 잘 알 터인데”하며, “차별을 당한 사람이 되돌아서 남을 차별한단 말인가” 하며 당사자인 나는 별로인데 아내는 오랫동안 침울해 하였다.
진짜 한국사람은 ‘Korean only’라는 규칙으로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아내는 나에게 말하며 한국사람을 변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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