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에 정식 운전면허를 딴 아들아이는 관심이 온통 차에만 쏠려있었다. 교회의 크리스는 포드 포커스를 가졌고, 대니얼은 폭스바겐 제타를 샀다고 운을 띄운다. 면허를 따기 전부터 "첫차는 중고차로…"하고 세뇌를 시켜놓았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으로 새차를 산 아이의 명단을 줄줄이 늘어놓는 것이다. 우리와 뜻을 같이하여 중고차를 사주겠노라고 하던 이들도 다 새차를 사 주었다. 교회의 친교실에서 만난 대니 엄마는 우리애가 차를 사면 대니얼도 난리를 칠 테니 중고차를 사주더라도 천천히 사주라고 조언까지 했었다. 그랬던 대니 엄마도 배반하여 새차를 뽑아주었단다.
주변 상황이 이리 돌아가자 우리 아이도 약간의 기대를 거는 것 같았다. 길거리의 작은 차를 눈여겨보고 차 색깔은 실버블루가 좋다니 어쩌구 하고 시간만 나면 인터넷의 자동차 사이트를 뒤진다. 나도 마음 한편으론 하나밖에 없는 아들… 새차를 사줄까… 하고 마음이 잠시 흔들리기도 하였다. 아들은 맘 약한 어미만을 공략한다. 드디어 아비가 모자간의 옥신각신에 결론을 냈다. "실버블루도 좋고, 할머니의 원조도 좋지만… 뒤로 미뤄야겠다."
"운전기술도 미숙하고, 차 부릴 능력도 아직 없는 사람이 새차 사는 것 어떻게 생각해?"
"오케이, 유스드 카 좋아요. 그런데 운전기술은 엄마보다 나아요." 제 입으로 중고차 좋다고 실토한 아이는 억울한지 엄마의 운전 솜씨에 토를 단다.
"코너웍이 편하고 짐도 실을 수 있고. 아빠가 타 본 차 중 가장 경제적인…" 미국의 제일부자인 월마트 사장 샘 윌턴도 18년째 도요타 픽업을 타고 있다며 일장연설도 한마디. 그 날 이후 아이에게 남편이 타던 빨간 픽업트럭이 배당되었다. 남편은 회사에 있는 여러 대의 작업차량 중 파란색 픽업트럭을 타기로 하였다. 아침저녁 학교에 그걸 타고 다니는 아이는 그래도 신이 났다.
아이는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가서 좋을지 몰라도 차 끌고 나간 아이가 조금 늦을라치면 어미는 노심초사이다. 신문에는 운전을 갓 시작한 아이들의 교통사고 소식이 많이 난다. 아이들의 사고는 인명피해가 크다. 대개 여러 명의 친구가 함께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는 예가 많다. 지난해에는 아이와 같은 학교 다니던 12학년 한국 아이가 과속으로 사고가 나서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의 채플에서 치러진 장례예배에 참석했다고 했다. 이 아이들에겐 사람이 죽은 것보다 그 형이 몰던 신형 벤츠 컨버터블이 폐차해야 할 정도로 못쓰게 된 게 더 화제였다.
한국의 외할머니는 손자에게 중고차 타게 하는 게 영 서운하신지 엄마 아빠 대신 할머니가 꼭 사주겠노라고 아이에게 약속을 하고 또 하신다. 우리 이웃인 미국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걸음마 하던 아이가 벌써 운전을 하느냐며 흐뭇해한다. 이곳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이가 수입이 생기면 그때 제 힘으로 새차를 사게 하는 것이 순서라며 중고차를 쓰게 한 결정이 당연하다고 거든다. 오늘도 군데군데 찌그러진 트럭에 시동을 걸어 학교 가는 아이를 보고, 꽃밭에 물 주던 잭 할아버지는 엄지를 치켜올리며 아이를 격려해주고 조간 신문 집으러 나온 한나 할머니도 함박웃음으로 손을 흔들어준다.
면허를 따고 운전을 시작한 아들아이. 차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세상이 자기 맘먹은 대로,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조금은 배웠으리라. 이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어 가는데, 부모 역할은 끝나지 않는다. 아아 어려운 부모 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