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와인 당당한 자리매김

2002-02-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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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의 향기

▶ 미국의 와인1

역사는 작은 사건 하나 때문에 물줄기를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소하게 보였던 사건이나 이벤트 하나가 엄청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드러나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미국 와인업계로서는 1976년에 있었던 한 이벤트가 바로 그런 의미를 지닌다. 이 해를 기점으로 미국 와인은 ‘이류’ ‘와인의 서자’라는 열등감에서 벗어나 당당히 자기 자리를 찾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벤트의 주인공은 미국인이 아니라 영국인이었다. 스티븐 스퍼리어라는 이 영국인은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 인근에서 ‘아카데미 뒤 뱅’이라는 조그만 와인 샵을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주 취급상품은 물론 프랑스 와인들. 이 가게는 주불 대사관 직원등 미국인 단골들을 갖고 있었는데 이들은 이곳에 들를 때마다 미국 와인을 들고 와 스퍼리어에게 맛을 보게 했다.

당연히 프랑스 와인을 세계 최고로 치고 있던 스퍼리어는 별 생각 없이 미국 와인들을 맛보기 시작했는데 몇몇 와인의 맛이 그를 놀라게 했다.
"장난이 아니다" 싶었던 스퍼리어는 친구 패트리셔 갤리거와 함께 1975년 북가주의 와이너리들을 직접 방문했다.


그리고는 이곳에서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파리로 돌아온 스퍼리어는 기발한 생각을 해낸다. 다름 아니라 프랑스 최고 와인들과 미국 와인의 비교 평가 시음회였다. 두 와인들을 비교한다는 발상 자체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당시 프랑스 와인의 명성과 미국 와인의 그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스퍼리어가 택한 방식은 ‘블라인드 테이스팅’. 병의 라벨을 가리고 맛을 보게 하는 방식이었다. 1976년 5월의 따스한 어느 날 파리의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프랑스의 내로라 하는 와인 감식가 12명이 모였다. 이들 앞에 놓여진 것은 화이트 와인 10종류와 레드 와인 10종류. 화이트 와인은 주로 샤도네였고 레드는 캬버네 소비뇽이었다. 이 가운데 12개는 북가주산이고 나머지 8개는 최고급 프랑스산이었다.

스퍼리어의 적극적인 홍보 덕으로 이 자리에는 프랑스 기자들도 와 있었다. 테이스팅이 시작됐다. 12명의 감식가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냄새 맡고 입안에서 굴리고 뱉어내기를 반복하면서 점수를 매겨 나갔다. 그리고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이 결과는 전세계 와인업계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최고점수를 받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이 모두 북가주산이었다. 최고 레드와인은 ‘Stag’s Leap Wine Cellars 1973 Carbernet’였으며 화이트와인은 ‘Chateau Montelena 1973 Chardonnay’로 나파밸리에서 생산된 와인들이었다. 프랑스 와인들은 다음 자리에 머물렀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이를 급히 타전했으며 프랑스 와인업계는 경악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도 이를 대서특필했다. "미국이 프랑스를 꺾었다"는 식의 논조에는 쇼비니즘이 배어 있었지만 와인에 있어서 그동안 미국이 프랑스에 가져오던 열등감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아무튼 1976년을 계기로 미국 와인업계는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그 자긍심은 끊임없는 품질 개선으로 이어져 미국 와인, 특히 캘리포니아 와인은 세계 어느 와인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다. 만약 스퍼리어의 이벤트가 없었더라면 캘리포니아 와인이 지금의 위치에 올라서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런 역사를 돌이키며 캘리포니아 와인을 음미한다면 그 맛이 한층 강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와인은 역사를 마시는 것이니 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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