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테러가 낳은 4가지 삶

2001-10-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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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현 편집위원

위로할 일이 적을수록 우리네 삶은 밝아진다. 위로 받을 사람이 드무니 슬픔도 덜한 것이다. 위로해야 할 일이 많을수록 세상은 어두워진다.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이 부지기수니 가슴앓이도 더한 것이다.

뉴욕 테러는 삶의 모양새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냈다. 테러에 자신의 의지가 담겨 있었는지 여부와 테러로 손해를 보았는지 이익을 보았는지를 따져 보면, 두루뭉실한 일상이 4개의 카테고리로 구획 정리된다. 위로의 대상이 누구이며 얼마나 변했는지 윤곽이 그려진다.

’제 1의 삶’은 자의로 테러를 기획하고 자행하며 결과에 만족하는 부류다. 여객기를 탈취해 세계무역센터에 돌진한 테러리스트들이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에게 위로라는 말은 영 맞지 않는다. 테러리스트들은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그들의 믿음처럼 알라 신의 가호로 꿀물이 흘러 넘치는 낙원에 들어갔는지, 아니면 천인공노할 죄로 지옥에 떨어졌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들이 위로 받을 대상이 아니란 것만은 분명하다.


’제 2의 삶’은 자의로 테러에 동참했으나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체포됐거나 도망자 신세인 용의자들에 해당된다. 이들이 땅을 치며 안타까워하겠지만 자업자득이니 누굴 탓할 입장이 아니다. 목적을 이루지 못해 통곡한다 해도 위로 받을 자격은 없다.

’제 3의 삶’은 자신의 의사와 아무 상관없이 테러사태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으나 오히려 득을 본 사람들의 것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여기에 속한다. 경기둔화를 풀어갈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에만 기댄다는 비난을 받아온 부시 대통령은 테러사건 이후 강력한 리더십의 소유자로 재평가되면서 인기절정을 누리고 있다.

친이민 법안을 저지하고 반이민 법안을 밀어붙이려던 현정부의 매파 인사들도 테러참사를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는 계기로 이용하려 든다. 예산과 실효성 문제 때문에 쟁점이 돼온 ‘미사일 방어체계’ 구상의 지지자들은 "바로 이때다"하며 어부지리를 얻으려 하고 있다. 성조기, 방독면 등 업주는 물론 테러 잔해청소를 맡아 떼돈을 벌게 된 마피아도 테러 특수에 희색이다. 테러 덕을 보았거나, 보려는 이들 ‘제 3의 삶’은 위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지막 ‘제 4의 삶’은 테러에 간여하지 않고 해만 입은 사람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고통을 감내하느라 지금 이 순간도 이를 악물고 있다. 테러에 이용당한 여객기 탑승객, 세계무역센터에서 열심히 일하던 직장인, 국방부에서 직무수행 중이던 군 고위간부 등 수천의 아까운 목숨들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나 심한 화상과 골절상으로 신음하는 부상자, 그리고 희생자의 유족들도 암흑 속을 걷는 심정일 게다. 위로를 받고 또 받아야 할 측은한 사람들이다.

이미 위로 받아야 할 삶들이 넘쳐 더 이상 늘어서는 안될 지경이다. 수적으로 보아도 그렇고, 그 깊이를 측량해도 그렇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이 테러 비호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반기는 사람 없는 남의 나라로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미국의 보복 공격을 피해 난민이 됐다.
150만여명이 피난길에 올랐지만 이란, 파키스탄 등 인접국에서 받아주지 않아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공습으로 정상적인 식량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사태가 심각하다. 미국의 군사행동이 장기화되면 본의 아니게 무고한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의 희생이 줄을 이을 것이다.

게다가 한달 후면 혹한이 몰아친다. 영문도 모른 채 아빠 엄마 손에 이끌려 피난길에 오른, 못 먹어 눈동자에 힘이 빠진 어린이들도 쓰러져 갈 것이다. 그러면 위로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다. 명분 있는 ‘테러와의 전쟁’이지만 위로 받을 사람을 양산하는 싸움이 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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