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먼저 ‘전장’을 정하라

2001-09-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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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마이클 왈처/뉴욕타임스 기고

테러사건 발생 후 워싱턴뿐 아니라 전국이 온통 전쟁 이야기다. 그것이 전쟁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이번 테러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걸프전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걸프전 이후 이라크에 대한 봉쇄정책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곡해가 테러를 부추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뿌리는 더 깊은 곳에 있다.

미국의 힘에 대한 반감과 미국의 가치에 대한 적개심이 테러를 유발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는 소위 ‘문명의 전쟁’은 아니다. 우리의 적이 하나의 문명을 대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이슬람의 종교적 열정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이슬람 문명과 전쟁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적국이 없고 명확한 전장이 없는 상황이다. 군사행동을 취하기 전에 할 일이 있다. 우선 국경에 집중적인 경비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둘째, 테러리즘을 변호하는 주장과 이를 거부하는 주장 등 모든 논쟁을 아우르는 이념적 캠페인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진지하고 지속적인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모두들 전쟁 얘기뿐이다. 전쟁을 수행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공격 대상이 테러리스트 조직과 연계가 있어야 한다. 또 이들을 공격할 때 다수의 무고한 양민이 희생돼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 기준을 따르지 못하면 우리의 문명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테러를 감행하는 꼴이 된다.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미사일이나 폭탄 대신 특수부대 요원들을 투입시켜 테러리스트 조직을 섬멸하는 게 바람직하다. 공격 목적이 테러리스트 자금줄을 차단하고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을 지원하지 않도록 해당 국가들을 굴복시키는 것이라면 보다 규모가 큰 공격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 경우라도 우리는 도덕적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예를 들어 아프간 정부에 압력을 넣기 위해 전기나 수도시설을 파괴해 가난한 주민들을 도탄에 빠뜨릴 수는 없지 않은가.

텅 빈 정부청사에 폭탄을 투하할 수 있다. 잘만하면 상징적인 행동으로 평가될 수 있다. 테러리스트 국가들을 고립시키고, 경제 제재를 가하며 그들의 국경을 봉쇄하고 비밀조직에 침투해 이념적 약화를 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영역에 큰 피해를 입힐 경우 당초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되고 결국 국제적 반테러 연대가 약화될 것임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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