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라져버린 여성들

2001-07-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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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모린 다우드/뉴욕타임스 칼럼

두어달 전 나는 반스 & 노블에 가서 "정사(情事)가 끔찍한 범죄로 끝나는 실화들을 모은 책"을 달라고 했다. 범죄수사물 작가 앤 룰의 ‘공허한 약속들’이 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9주나 있는 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전 시애틀 경찰관이자 연방수사국 자문관인 룰은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 사라져 버리는 이야기를 자주 쓴다. 델라웨어의 탐 카퍼 주지사 비서였다가 지난 96년 6월 사라진 앤 마리 파히 케이스도 포함된다. 주지사의 친구이자 부유하고 저명한 변호사가 앤 마리 총격혐의로 체포되자 주민들의 충격은 컸다. 그는 앤 마리가 둘 사이의 정사를 끝내려 하자 범행을 저질렀다. 유부남인 그 변호사는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사체를 대서양에 버렸으며 경찰이 그의 집에서 혈흔들을 찾아내자 앤 마리가 자살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나는 룰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워싱턴을 사로잡고 있는 경찰수사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개리 콘딧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실종된 챈드라 레비와 그의 관계가 이번 사건수사에 필수적 요소라고 했다. 미디어의 관심을 요란하다거나 외설적이라고 묵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여성은 아주 낭만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해요. 르윈스키건 앤 마리이건, 아니면 다른 많은 이름 없는 여성들 중의 하나이지요. 권력 있는 남성들의 서클에 들어가서는 자신이 얼마나 쉽게 버려질 수 있는 존재인지를 모르는 여성들입니다"라고 룰은 말했다. "그 여성들은 너무 순진해서 자신이 그 권력층 남성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빌 클린턴 탄핵조사 때 연방하원 민주당 법률고문이었던 콘딧의 변호사는 지금 ‘사생활 침해’라며 클린턴 카드를 쓰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먹혀들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요란스런 타블로이드 이야기가 아니다. 수세기를 걸친 드라마와 소설과 저널리즘의 소재이다. 그것은 환자들의 권리법안이나 선거자금을 다루는 것만큼이나 아니면 그 이상 적법한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언론은 진실을 밝혀내는 데 없어서는 안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 밤 콘딧은 마침내 경찰에 정사 사실을 인정했다. 사건 발생 9주, 경찰 면담 3번, 그리고 레비 가족의 격렬한 미디어 동원작전 이후의 일이다. 워싱턴 포스트와 챈드라의 이모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챈드라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남자의 셔츠를 색색깔로 정리하고, 선인장 테라리움을 만들었다든지 하는 생생하고도 슬픈 세부사항들이 나온다.

정사 사실을 인정하는 한마디 얻어내는 데 두 달이 걸렸다는 사실은 지나치게 방어적인 콘딧과 지나치게 공손한 DC 경찰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콘딧은 이제 연방 하원의원으로서의 커리어를 끝내야 한다. 정치 자문가들은 콘딧에게 정사 사실을 좀 더 일찍 인정하라고 수없이 말했지만 콘딧은 자신의 사생활 영역을 보호받아야 한다며 이를 거부해 왔다고 한다. 르윈스키 스캔들 때 힐러리가 사생활 영역의 보호를 수없이 탄원했지만 이를 묵살하고 탄핵 심리에 찬성표를 던졌던 그가 그런 말을 하다니 우스운 일이다. 정치가가 사생활 영역을 원한다면 공적으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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