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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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날 줄 아는 사람들

2001-07-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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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러시엄

▶ 박덕만 <편집위원>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뒤따르던 무리들이 저마다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았으나, 으뜸공신인 장량만은 부귀영화와 권력을 마다하고 야인으로 돌아가 청빈한 생활을 했다. 이에 대해 불만을 품은 두 아들에게 장량은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천하 만민을 도탄에서 구해 냈으면 할 일을 다한 것이다. 그 이상 욕심을 가지면 몸을 망치는 법"이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장량은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았던 현명한 사람이었다. 다른 측근들은 권력을 탐내다가 결국 유방에게 죽임을 당한 반면, 장량은 권력의 주변에서 벗어나 있었던 덕분에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샌디에고 파드레스의 ‘타격의 달인’ 토니 그윈(41·사진)이 지난주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윈은 지난 1982년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을 시작한 뒤 올 시즌까지 20년간 파드레스 한 팀의 유니폼만을 입어온, 요즈음 같이 돈만 많이 주면 서슴없이 팀을 바꾸고 사소한 이익을 따져 선수를 트레이드 하는 프리에이전트의 시대에 보기 드문 선수다. 20년간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3,124개의 안타에 통산타율 3할3푼8리로 메이저리그 사상 16위에 올라 있다. 2차 대전 이후로는 테드 윌리엄스에 이어 2위. 17년 연속으로 3할대 타율을 기록했고 타격왕에 등극한 것만도 도합 8차례다.


지난 1982~1998년 17년간에 걸쳐 2,632게임 연속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철인’ 칼 립킨 주니어(40)도 얼마전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1995년, 당시까지 영원히 깰 수 없던 기록으로 간주되던 루 게릭의 2,130게임 연속출장을 경신하고도 502게임을 더 추가한 그는 지난 1983년과 1991년 두 차례 리그 MVP에 올랐고 1991년, 1992년 두 차례 골든글로브를 수상했다. 400개 홈런, 3,000안타를 겸비한 사상 7번째 선수며 18년 연속 올스타에 뽑혔다.

각각 81년과 82년 비슷한 시기에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을 시작한 그윈과 립킨은 올 시즌이 끝나면 현역에서 물러난다는 점 외에도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20년여의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을 한 팀에서 마치게 됐다는 점이 그렇고 이미 명예의 전당 티켓을 확보해 놓았다는 점도 그렇다. 또한 본인들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뛸 수 있는 시점에 현역생활을 마감한다는 사실도 공통점이다.
공수신퇴(功遂身退)라고 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공을 이루면 마땅히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올바른 처신을 위한 큰 교훈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지킬 줄 모른다. 물러날 때를 놓치면 그동안의 성공마저 실패로 귀결되는 데도 불구하고 탐욕을 부리다가 파국을 맞는 것이다. 권좌에서 쫓겨나 이국 땅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이승만 박사나 믿고 아끼던 부하의 손에 쓰러진 박정희 대통령이나 모두 물러날 때를 놓쳤던 인물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물러날 때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정치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공을 이룬 뒤 떠날 때를 놓침으로써 자신을 망치고 나라에 누를 끼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달도 차면 기울고 해가 뜨거워도 때가 되면 서산으로 지는 이치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은퇴계획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립킨은 "영원히 뛸 수는 없는 일"이라며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임기가 끝난 다음에도 무슨 미련이 그리 남아 있는지 곱게 은퇴생활을 하지 못하고 추태를 보이고 있는 YS나, 총칼을 함께 쥐고 정권찬탈 놀음에 나섰던 동지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지금까지도 권력욕에 사로잡혀 부모 묘를 불법 이장하다가 구설수에 올라있는 JP나, 모두들 되새겨 볼만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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