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마주치면 빽빽한 문신과 옥수수밭(cornrows) 헤어스타일로 인해 겁을 집어먹게 되지만 막상 고개를 들어 얼굴을 쳐다보면 티없이 순수해 보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에 저절로 안도를 하게된다. 어쩌다 살짝 눈웃음을 짓는 모습이라도 보면 여자들의 가슴이 녹는다"
LA타임스의 한 여기자 - 스포츠기자가 아님 - 가 쓴 칼럼의 서두다. 여기서 그는 필라델피아 76ers의 스타플레이어 앨런 아이버슨이다. 베비 페이스의 아이버슨은 이번 플레이오프를 통해 많은 여성들을 - 스포츠팬이 아닌 - TV스크린 앞에 앉게한 공로로 NBC-TV로부터 특별 보너스라도 받을만하다. 농구의 ‘농’자도 모르는 우리 신문사의 동료 여기자들도 아이버슨의 몸에 한자로 충(忠)자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LA레이커스가 필라델피아를 4승1패로 꺾고 챔피언 트로피를 차지함으로써 2000-01 NBA 시즌이 막을 내렸다. 18일 LA다운타운에서 열린 레이커스 2연패 축하퍼레이드에는 지난해의 2배 가까운 50만명의 군중이 몰렸다. 물론 대다수 남가주 농구팬들의 이목은 레이커스의 두 기둥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에 쏠려있지만 개중에는 이번 NBA 파이널이 7차전까지 가지 못하고 5차전에서 끝남으로써 장대숲을 헤집고 다니며 신출귀몰한 슛을 쏘아대는 아이버슨의 현란한 플레이를 더 이상 볼수 없게됐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아이버슨 때문에 필라델피아를 응원했다는 변절자(?)까지 나왔다.
아이버슨의 신장은 6피트, 체중은 165파운드다. 일반인으로는 작은 체격이 아니겠지만 농구선수로서는 ‘꼬마’에 가깝다. 이같은 단신에 7피트, 300파운드 가까운 거구들 틈을 종횡으로 누비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상대선수들은 슬로모션으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아이버슨은 파이널 1차전에서 연장 3분여를 남겨놓고 3포인트를 뒤진 상황에서 연속 7포인트 득점을 하며 레이커스에게 올시즌 플레이오프 유일한 패배를 안겨주는 수훈을 세웠다.
올시즌 게임당 평균 플레이시간 42분, 평균득점 31.1포인트를 득점하고 2.5개의 스틸을 기록, 주요공격 부문에서 수위에 올라 정규시즌 MVP트로피를 수상한 아이버슨은 조지타운대 2학년이던 96년 NBA 드래프트에서 종합1번으로 76ers에 드래프트돼 첫해 신인왕상을 수상한 뛰어난 기량의 소유자다.
아이버슨은 얼핏 보면 스무살도 안돼 보이는 앳된 얼굴이지만 지난 7일로 26살이 된 두아이의 아버지다. 그의 성장과정은 대부분의 다른 흑인 스포츠스타들과 마찬가지로 불우했다. 흑인 빈민가에서 14세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농구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갱이나 마약 딜러 하수인으로 감방을 제집안방 드나들었을 것이 틀림없다. 실제로 그는 18세때 폭력사건에 연루돼 4개월간 실형을 살았다. 20세 때는 불법무기 소지혐의로 체포됐고 마리화나가 차안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NBA스타가 되고난 후에도 반항적 기질은 고쳐지지 않았다. 지난 여름에는 래리 브라운 코치와 갈등을 빚은 끝에 꼴찌팀 클리퍼스로 이적설이 나돌기도 했다. 작년에는 랩 CD를 하나 취입했는데 게이와 여성들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고있어 문제가 됐었다. 말썽이 나자 사과는 했지만 가사 내용은 바꾸기를 거부했다. 트러블메이킹이 잦은 탓으로 ‘Me, Myself and I-verson’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나는 나일 뿐이다. 나 자신을 뜯어 고칠생각은 없다"(I am who I am, and no apologies)고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버슨은 재능(talent)과 열정(passion)을 동시에 갖춘 선수라는 표현대로 코트에만 서면 펼펼난다. 6피트 단신에 멋진 덩크슛까지 구사할 정도로 점프력이 뛰어나고 1차전에 패한 레이커스가 샤킬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의 선수를 총동원해 간신히 막아낸 순발력 있는 선수다. 파이널 5게임에서 게임당 평균 47.4분을 뛰며 40.7%의 야투성공률로 한결 성숙해진 모습을 보였던 아이버슨이 레이커스의 3연패 위업을 저지할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