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핵동결 협정 성공적이다
2001-06-14 (목)
▶ 미국의 시각
▶ 조엘 위트(브루킹스 연구소 상임연구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대가로 핵 개발 동결 약속을 받아낸 1994년 협정을 놓고 보수파들 사이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북한에 식량과 원유 등 이것저것 주기만 하고 제대로 받아낸 것이 없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나는 당시 국무부 관리로 있으면서 이 협정 초안 작성에 관여했던 사람이다. 95년 이후 갈루치가 대북 조정관으로 임명되자 그 밑에서 일하면서 이 협정 이행에 관한 실무작업 차 북한을 최소 10여차례 방문했다. 애초 이 협정의 가장 큰 목적은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고 북한 정권의 붕괴로 인한 한반도 안정이 깨지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94년 협정은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고 본다.
만약 당시 이 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더라면 북한은 핵 개발을 계속했을 것이고 그 결과 지금 한반도에는 최소 10여개에서 수십개의 핵폭탄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핵폭탄으로 무장된 한반도를 한번 상상해 보라. 남북한 관계도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이 완화된 상태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요청에 모두 고분고분 응하는 것은 아니나 주요 부분에 관해서는 협정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본다. 극비리에 핵을 개발하고 있는 것까지는 모르나 지금까지 알려진 영변과 신포, 금창리 일대에서 핵 개발이 중단된 것만은 분명하다.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 때와 다른 대북 정책을 펴리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나 획기적인 변화는 없으리라 본다. 북한과의 대화를 계속하는 것 이외의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핵 개발에 관한 보다 까다로운 검증을 요구할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검증을 해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일 따름이다.
북한이 부시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지는 알 수 없지만 최근 미사일 실험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은 북한이 미국 측에 의외의 양보를 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사실 북한은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더 간절히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하고 있다.
북한 정권이 외부에서 받은 구호물자를 군사용으로 전용한다는 주장도 일방적으로 믿을 것은 못된다. 물론 일부 군용으로 사용되는 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은 분명 북한 주민들에 전달되고 있다는 게 현지 구호관계자 이야기다. 얼마 전 독일 의사가 북한의 구호물자 전용을 폭로해 화제가 됐지만 그 사람은 구호단체 인사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크레딧이 없는 인물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국내외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나치게 유화 일변도라는 지적도 일리는 있지만 전임자인 김영삼 대통령에 비하면 훨씬 북한에 대한 이해가 깊고 일관성 있는 정책이라 본다. 김영삼 대통령은 하루 밤사이에 정책이 바뀌는 식으로 갈팡질팡해 미국을 당황하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금강산 사업을 통해 북한측에 일방적으로 돈을 갖다준 것을 빼고는 현 상황에서 최선의 정책을 펴왔다고 본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목청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밖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냉혹하지만 유능한 지도자인 김정일은 앞으로도 결코 북한 주민에 대한 통제를 풀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오랜 기간 북한 체제의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현재로서는 한반도의 안정이 최우선 과제며 남북한이나 미북한 관계가 단시일 내 획기적으로 개선되리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