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택한 온건파의 승리
2001-06-09 (토)
▶ 미국의 시각
▶ 조엘 캇킨 (월스트릿 저널 칼럼)
LA는 이번 선거를 통해 8년간의 시정 개혁 실험을 끝내고 전형적인 리버럴 민주당원을 시장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더 많은 자금을 동원한 좌파 대중선동가인 안토니아 비야라이고사를 낙선시킴으로써 LA 시민들은 이 거대한 도시가 사회 민주주의 실험장으로 전락하는 것은 허용치 않았다.
리버럴과 소수계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에도 노조와 환경보호 단체, 페미니스트 그룹의 지원을 받고 있는 비야라이고사를 LA 시민들이 7% 포인트 차로 거부한 것은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선거에서 좌파가 패배한 것은 시장직 만이 아니다. 노조와 환경단체, 민주당의 지지를 받은 후보들은 시 검사장과 시의원, 교육위원 선거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급진파 탐 헤이든의 낙선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번 선거의 파장은 가주는 물론 미 전역에 미칠 것이다. 비야라이고사의 승리를 노조 활성화의 계기로 삼으려던 존 스위니 미 노조 총연맹 의장과 역시 그 덕을 보려던 그레이 데이비스 가주지사는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비야라이고사를 물리친 제임스 한은 전형적 리버럴 성향의 정치인이며 흑인들의 지지를 받았던 케네스 한의 아들이다. 무색무취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그는 이번에 놀랄 정도로 열의 있는 캠페인을 펼쳐 흑인표와 함께 샌퍼낸도 밸리의 중도 및 보수표를 잡는데 성공했다. 지난 예선에서 승리한 비야라이고사는 LA 전역을 돌며 LA 타임스, 리오단 LA 시장, 클린턴을 지지한 억만장자 엘라이 브로드등의 지지를 얻어내며 선거전부터 승리를 자축하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한은 범죄와 경제 같은 로컬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상대방의 인격과 정치성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비야라이고사 자신이 공격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했다. 범죄가 다시 고개를 드는 지금 미 민권연맹에서 지도자 역할을 했던 그의 경력은 범죄에 소프트하다는 인상을 심어줬으며 코케인 딜러로부터 정치자금을 받고 클린턴에게 그를 사면해달라고 편지를 쓴 일도 그의 이미지를 흐렸다. 유세기간중 그에게 사생아가 둘이나 있으며 클린턴 못지 않은 바람둥이라는 사실도 보수적인 그리스도 교회 신자인 한에게 표가 몰리는 원인이 됐다. 그러나 비야라이고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의 정치성향이다. 그의 캠페인은 시장 선거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 운동적 성격을 띄고 있는 것으로 비춰졌다. 결국 LA 시민은 안전한 한을 택했다.
선거 후 좌파 언론인들은 그의 패배를 인종차별주의와 한의 저질 캠페인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최대 수혜자는 중도 노선으로 선회한 라티노 유권자들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라티노 유권자의 대부분이 비야라이고사에게 표를 던지기는 했지만 절반은 그가 너무 리버럴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렉스 파디야나 닉 파체코 LA 시의원, 리처드 폴랑코 주 상원의원등 온건파 라티노 정치인들은 한을 지지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LA시민들이 비야라이고사는 버렸지만 락키 델가디요를 시검사장으로 선출한 사실이다. 전 경제담당 부시장이던 델가디요는 노조와 환경단체의 지지를 받던 마이크 퓨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비즈니스맨들의 지지를 받은 그는 라티노 엘리트 온건파의 얼굴로 떠오르고 있다. 좌파가 몰락한 이번 선거는 한 당선자에게 지난 8년간 리오단이 이룩한 경제발전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가 성공할 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LA의 장래가 지난 수개월내 가장 밝아진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