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실시된 LA시 선거결과는 표면적으로는 LA시의 구정치세력이 신정치세력을 누르고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제임스 한은 백인과 흑인등 나이든 유권자층으로부터 지지를 얻어 승리했고 패배한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는 라티노와 유태계를 포함한 진보적 백인, 젊은 흑인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그래서 겉으로 본 선거 결과는 ‘과거’와 ‘미래’의 대결 끝에 과거가 승리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과거 샘 요티와 탐 브래들리가 겨루었던 신구세력의 대결,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라 지난 30년간 LA 정치판도의 주도권을 잡아온 신정치세력간의 대결이었다. 1960년대 중반의 요티-브래들리 대접전 이후 우리는 누가 진보파고 누가 보수파인지 확연히 알 수 있게 됐다. 브래들리를 지지하고 경찰개혁을 주장한 진보세력은 흑인, 유대인, 라티노로 이루어져 있었고 요티와 경찰 수뇌부를 지지했던 보수세력은 백인 보수주의자와 중도파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같이 간단명료했던 이 도시의 정치구도는 라티노의 대두와 함께 흐트러지게 됐다. 백인들이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그 공백을 라티노가 메우면서 LA시는 보다 민주당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띠게 됐다. 1993년 시장예선에서 8%에 불과했던 라티노 표의 비율이 이번 선거에서는 22%로 크게 늘어났다. 변두리에 머물고 있던 라티노 파워가 중심권으로 이동했으며 백인 유권자중 유대계의 비율도 8년 전 4분의1에서 이번 선거에서는 3분의1로 높아졌다.
라티노의 대두는 LA시 진보세력의 비율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그 결과 이번 시장 선거에서는 2명의 민주당 진보파 후보가 본선에 진출, 덜 진보적인 후보가 더 진보적인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 진보적 도시의 선거에서 이처럼 보수적인 결과가 나온 것은 무슨 이유일까.
첫째는 민주당, 진보파 후보들만의 본선 진출이 보수세력의 결집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스티브 소보로프가 본선에 진출했더라면 상대가 한이든 비야라이고사든 무조건 참패당하고 말았겠지만 두 명의 진보파 후보가 겨룸으로써 백인 보수세력의 표가 결정권을 쥐게 된 것이다. 한은 이들 백인 보수세력에게 중도파의 이미지를 심어 주는데 성공했다. 한의 캠페인은 비야라이고사처럼 주 차원이나 전국적 차원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로컬 이슈에 포커스를 집중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한의 거친 캠페인 광고와 인신공격성 유인물 발송이 선거전에서 먹혀들었다.
한은 비야라이고사 만큼 많은 지지성명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이를 범죄문제에 연계시킴으로써 어필할 수 있었다. 한이 백인 보수, 중도세력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부재자 투표 모으기에서 압도적 우세를 보이게되자 비야라이고사는 보다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오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동안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장애에 비추어 비야라이고사의 캠페인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한의 공격에 대처한 자세에는 재론의 여지가 많다. 왜 비야라이고사는 선거기간 그같이 수세에만 몰려 있었는가. 왜 자신이 한보다 뛰어난 시장감이라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는가. 비교 캠페인은 부정적 캠페인과는 다르다. 비야라이고사가 한이 기존 정치세력에 뿌리를 둔 낡은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더라면 선거결과는 달랐을 수도 있다.
LA시 정치권의 네 기둥을 이루고 있는 라티노와 유대계, 밸리 보수파, 흑인은 이번 선거에서 다소 어색한 합종연횡을 했다. 흑인이 백인들과 보수연합을 이뤄 한을 지지한 것 말이다. 그러나 흑인 세력은 앞으로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이뤄질 경우 진보의 대열에 서서 라티노와 연합을 이룰 것이다. 시검사장 선거에서 백인들에게 합세해 보수파인 락키 델가디요에게 표를 던졌던 라티노 세력이 앞으로 다른 선거에서는 흑인들과 연합할 것이 틀림없는 것처럼 말이다. LA의 진보성에 대해서는 새로운 정의가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