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를 찾아가는 여행

2001-06-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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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차선/정토회 회원

요즘 일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가는 여행에 관심이 많다. 그만큼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잘 모른다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관계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괜히 나 혼자 좋아하다가도, 아무 이유 없이 화가 불끈 불끈 올라오기도 하고 이것 역시도 내면의 나를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여러분은 지금 어느 마을에 살고 있는가? 지금까지 나는 여러 마을에 살아 보았다. 각 마을마다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싫어’마을에 살았었다. 이 마을에서는 무슨 말만하면 "싫어 짜증난다"고 말한다. 이 마을 사람들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고 말에는 가시가 늘 있다. 자기들끼리 더 깊고 더 날카로운 가시를 만들어 찌르기 위해 열심이다.


‘무뚝뚝’마을에도 살았었다. 월세로 1년 정도 살았었다. 이 동네는 얼굴 표정도 없고 대답도 희미하다. 이 동네 사람들의 얼굴은 화가 나있는 듯 보인다. 그러다가 어느 날 크게 폭발을 하면 집안 가구들이 박살이 난다.

30대 초반에 나는 ‘해야지’ 마을에 살았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해야지" 하면서도 도무지 실천하지는 않는다. 늘 해야지 하고 걱정과 부담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만약 이런 걱정과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것도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이다. 하도 염려를 하고 걱정을 해서 염려와 걱정이 없는 것도 걱정이요 근심인 사람들이다.

나는 30대 중반에 또 한번 이사를 했다. ‘그것을 했더라면 좋았을 걸’ 마을이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늘 때를 놓치고 후회와 원망을 한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늘 지난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강 건너에도 마을이 있다기에 배를 타고 그 마을에 가 보았다. ‘구나겠지 감사’ 마을이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무엇을 보아도 "그렇구나" 했다. 자기 성격과 가치관, 경험으로 쉽게 판단하지 않았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면서 입장을 바꾸어 상대방을 헤아려 보기도 하고 세상살이가 늘 열려 있음을 알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부여하는 해석하고 번역하는 능력인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늘 감사로 받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이 마을을 다녀온 후 많은 감동과 충격이 있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다짐했다. 나도 저 마을에 가서 살아야겠다고 말이다. 먼저 그 동네로 이사를 했다. 조금은 낯설고 어색했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 살던 습관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그 마을 사람들이 그리웠지만 일단 이사를 하고 보니 서서히 나는 ‘구나겠지 감사’ 마을 사람이 조금씩 조금씩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내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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