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둘기

2001-06-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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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선열/아케디아

며칠 전부터 벼르고 별렀던 세차였기 때문에 아침 일찍 온 가족이 목욕을 하는 즉시, 세차장에 들러 세차를 하였다. 차를 갖고 부터는 내 몸을 닦는 일 못지 않게 세차를 하는 일 또한 중요하고 세차를 한 날은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기도 하다. 그래서 세차를 한 차에 오르며 주는 팁은 아깝지 않으며, 뒤에서 심심한 걸 견디지 못해 유리창 문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아들에게 단단히 교육을 시키는 것이었다. “너 절대 창문 열면 안 돼!” 그러면 아들은 짐짓, 엄마가 사랑하는 것이 차인가 나인가 조금 의심해 보는 듯한 눈치를 보일 때도 있지만 그럭저럭 엄마의 잔소리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세차는 장난이 아니었다. 세차를 하고 돌아와 집 앞에 차를 갖다 대면, 지나가던 녀석들이 아이스케키 먹던 손으로 쓰다듬고 가거나, 며칠만 세차를 안 해도 뿌예져서 때론 차를 깨끗이 닦으라느니, ‘세차’라고 써놓고 가는 통에 차를 타고 어디라도 가려고 하면 민망하기 일쑤였다.
그뿐 아니라 날씨도 도와주질 않았다. 뿌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돌아오면 비까지 뿌려 차의 표면이 그릇 싸는 포장지처럼 올록볼록해 보이곤 해서 늘 차에 신경이 곤두서곤 하였다.

그래서 세차는 한 주의 일과였다. 집안 대청소를 하고 나면 마당에 있는 호스를 끌고 나와 동네방네 물을 주고 비누거품을 뿌려대서, 지나가던 아저씨는 “좀 살살 뿌리슈” 하거나, 맘씨 좋은 아저씨라도 ‘또 세차하우?’ 하며 한마디 거들고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공을 들이건만 한국의 먼지와 날씨는 나로 하여금 세차 노이로제에 걸리게 할 때가 많았다.


미국에 다녀오신 동네 할머니께서, 영감님과 함께 미국을 다녀오셨는데 와이셔츠 깃이 하나도 더러워지지 않는 곳이라며 미국 다녀온 자랑을 하셨다. 나는 그림에서 본 뉴욕의 마천루를 떠올리며 할머니의 말씀을 반신반의하였다.

그런데 정말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와 보니 한국의 황사현상도 없고 먼지를 뒤집어 쓸 일도 없어, 주부인 나로서는 여간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비둘기 오물이었다. 오는 아침에도 세차를 하고 신나게 나무 그늘 밑을 지나는데, 세차를 한 차에 자신의 오물이 어디까지 나가는지 실험이라도 하듯, 한번의 실험에 그치지 않고 두세 발을 쏘아대고 가는 것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오물을 뿌리긴 했지만 비둘기를 욕하지 않는 엄마의 자상함을 보이려고 “괜찮아, 요 앞 식당에 가서 휴지 얻어서 닦지, 뭐” 하고 미소를 지었지만 마음만은 부글부글 끓었다.

한번은 나와 함께 영어공부를 하러 다니시는 분이 내 차 앞 유리창에 쏘아댄 비둘기 오물을 보며 ‘세차 좀 하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세차를 할까 말까 망설이던 참이었는데 그런 말을 듣고 나자, 얼굴이 활활 달아오르며 하늘을 나는 비둘기가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말을 들은 지 며칠이 못되어 그 분의 차 앞쪽에도 무슨 Emblem이나 되는 것처럼 비둘기 오물이 쫙 퍼져 있었다. 나는 질세라 기다렸다는 듯이 “비둘기가 X를 쌌나봐요. 아유 더러워라” 하고 한마디 해 드렸다.

비둘기 오물과의 전쟁은 시작되었건만 캘리포니아의 태양은 너무나 뜨거워서 깜빡 잊고 은행에 볼 일이라도 있어 나무 그늘에 주차를 했다간 영락없이 비둘기 오물 세례를 받곤 하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길가에 차를 세워 두는데 서너 시간 길에 세웠다가 차를 타려고 하면, 창 밑에 놓아두었던 선글라스 테는 너무 뜨거워서 쓰기 전에 붕어빵을 먹을 때와 같이 호호 불어서 써야 하고, 차의 핸들은 빈대떡을 뒤집는 심정으로 몇 번이고 만졌다 놨다 한 후에 출발을 할 수 있으며 차안은 얼마나 더운지 따로 사우나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얄미운 비둘기이건만 아침이면 산 저 멀리서 들려오는 산비둘기 소리는 먼 이국 땅에 온 나에게 아름다운 정서를 안겨주었고, 때론 뜨거운 한낮, 배 깔고 누워 있으면 정겨운 비둘기 소리가 나를 잠재웠다. 나는 비둘기와 전쟁을 하느니 차라리 오물을 뿌릴지언정 노래를 불러주는 비둘기를 사랑하리라 마음먹고 오늘도 뜨거운 차를 타고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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