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로운 신화를 향하여

2001-06-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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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에세이

▶ 손영우 <스포츠·레저 부장>

누가 알았나, 레이커스가 여기까지 올줄을.

’언제나’ 껄끄러운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3-0으로 젖히고, ‘영 탤런트’ 새크라멘토 킹스를 어린애 손목 비틀듯 4-0으로 깨더니 자타가 공인하는 공포의 ‘두 장대’ 던컨과 로빈슨이 버티고 있는 샌안토니오 스퍼스마저 4-0으로 주물러 내버렸다.

플레이오프 전적 11승 무패!


정규시즌서 간판 코비 브라이언트와 샤킬 오닐이 티격태격 다투며 때로는 하루 이기고 하루 지던, 전혀 챔피언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던 LA 레이커스가 이렇듯 ‘일을 저질러 버렸다’. 이제 마지막 남은 동부 패자마저 싹쓸이로 꺾어 버리면 플레이오프 15승 무패! 이건 가슴떨리는 일이다.
올 마이티 마이클 조단의 시카고 불스도 이루지 못했고(91년 15승2패 우승이 최고기록), 매직 존슨과 카림 압둘 자바가 버텼던 80년대 레이커스도 넘볼 수 없었던 일이다. 윌트 채임벌린의 76ers도 달성하지 못했던 순도 100%의 금자탑을 쌓는 것이다. (매직넘버가 15로 바뀌기 직전 해인 83년 필라델피아 76ers 의 12승1패가 최저패 우승)

사상 최초의 한점 흠없는 챔프 등극을 위한 레이커스의 도전은 시작됐다. 지금까지는 승리, 놀라운 승리의 연속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일전 일전이 새로운 신화에의 도전이다.

안테나에 레이커스 깃발을 꽂은 자동차들은 경적을 빵빵 울리고, 코비 브라이언트의 8번 저시를 구입하는 청소년들의 줄속에는 젊잖은 양반도 히죽거리며 섞여 있다. 모두 ‘가장 위대한 팀’ 탄생을 희망하는 예포들이다. 막강 스퍼스를 초토화,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린 코비의 기량은 농구황제 마이클 조단에 필적한다거나, 지금 레이커스는 90년대 시카고 불스보다 낫다는 입씨름도 늘었다.

명예의 전당급 래리 버드가 "마이클로 변장해 나온 신’이라고 칭했던 조단에 ‘감히’ 견주는 불경 발언이 오픈 포럼에서 열을 띤다. 코비의 특히 최대난적 스퍼스전에서 보여준 사통팔방 막힘없는 신들린 플레이는 가히 조단 같았고, 샤킬 오닐의 공룡파워와 데릭 피셔, 릭 팍스의 팀플레이가 엮어내는 이기는 솜씨는 과거 불스를 연상케 하지 않는가.

그러나 LA타임스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마크 하이즐러 같은 이는 ‘닮은 것과 사실’을 착각하는 혼란이라며 불쾌해 한다. 풀로 뛴 6년간 챔피언십을 6번 모두 먹었고, 슛성공률이 ‘커리어’ 통산 51%에 달했던 농구의 신 조단에 한 시즌 48%가 최고인 코비를 어찌 감히 비교할 수 있냐는 것. 한 시즌 반짝 조단을 닮은 선수들은 많았어도 ‘조단’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조단은 조단이고 어린애(코비 별명)는 어린애일 뿐"이라는 둘과 같이 뛰어본 노장 론 하퍼도 같은 생각이다.

감히 조단과 비교하는 것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이고 신성모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규시즌에서는 가당치도 않아 보였던 놀라운 연승행진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코비가 조단과 다르고 레이커스가 불스와 다를지라도 코비와 레이커스는 가장 위대한 선수, 가장 위대한 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재주는 있으나 개인이 앞섰던 코비는 하루아침에 이렇게 달라졌을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옛날의 코비가 아니다. 전천후 플레이어로, 플레이 메이커로, 플로어 리더로 면모를 일신했다. 위대한 교사 제리 웨스트를 만나 ‘농구란 무엇인가’를 깨쳤다지만, 필요할 때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코비의 흡인력이 놀랍다. 탁월한 농구재능과 고교시절 SAT시험에서 1,000점 이상을 받았던 총명함을 갖춘 22살 창창한 코비에게 조단이란 과거의 잣대는 어쩌면 무의미할지 모른다.


더욱이 지금 레이커스에는 샤킬 오닐이란 공룡의 파워가 있고 데릭 피셔와 베테란 릭 팍스나 로버트 오리의 성실함과 투지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을 마력같은 매니지먼트로 조율하는 필 잭슨 감독이 어떤 명작을 연주해낼지는 예단을 불허한다.

"사상 초유의 15승 무패 챔피언? 왜 하면 안되나. 성공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어중간한 타협을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라는 릭 팍스의 프로근성과 어제 오늘 내일이 다른 레이커스의 적응력에 새로운 가능성과 레이커스의 신화가 숨어있다.

멀리 있어야 존경이 따르고 옛날 이야기라야 무게가 있어보인다. 신화는 현재에 없다. 그러나 신화는 항상 현재진행형이다. 아이버슨의 76ers든 삼각포로 무장한 벅스든 좋다. 레이커스의 새로운 신화 첫장이 써지는 6월6일 스테이플스센터의 1차전이 벌써부터 내 가슴을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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