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다릴줄 아는 마음

2001-05-3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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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비나/하와이 문학 동인회

오늘 있었던 일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글로 옮겨 본다. 나는 그냥 있을 때는 느린 편인데 일단 차를 몰고 갈 때는 왜 그리 급한지 모른다고 남들이 말한다. 한번은 오피스에 갔더니 경비가 “너 차를 천천히 몰아라” 하여서 옆에 있는 분에게 “정말이냐” 묻자 “빨리 달리는 것은 모르나 네 차가 휙 왔다 간 것은 안다” 하고 농담을 할 정도이다.

병원에 가는데 도와달라고 친지가 부탁하여 그 분들을 모시고 시간이 늦은 것같아 달리는데 분명히 파란 불이 바뀌었는데도 앞차도 안가고 오른쪽 차도 왼쪽 차도 다 나란히 서서 기다리는 것이다. 왜 안 가느냐 하고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앞을 보니 왼쪽에서부터 나이 많은 노인이 지팡이에 몸을 싣고 뒤뚱거리며 간신히 걸어가는 것이다. 반바지 차림에 지팡이를 집고 오른 발이 불편한지 힘겹게 걸어가는 것을 왼쪽 옆 차에 있는 젊은이도 오른쪽 중년도 내 앞의 차에 있는 분도 서서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내 옆 차의 젊은이 얼굴에 엄숙한 모습으로 그 노인을 지켜보며 느긋이 기다리는 것이고, 중년도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고, 앞차의 표정은 안 보이지만 그도 마찬가지로 엄숙하게 저 노인의 걸음을 마음 속으로 빌어주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마도 그 순간에 자신들의 앞날에 저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지 않는가 라고 엄숙하게 지켜보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 순간이 3분이 넘는지 파란 불이 끝이 나고 빨간 불이 들어올 때까지 그 노인은 건너갔다.


3차선에 있는 운전자들이 그 노인이 끝까지 건널 때까지 서 있다가 차를 움직였다. 그 순간에 나는 많은 생각을 하였다. 생의 마지막을 다 왔을 것 같은 그 노인의 발걸음을 우리가 그와 함께 걸어가는 마음으로 보았다.

노인 역시 나는 편안하게 당당하게 후회 없이 살았노라 하는 것 같았고 나는 숙연한 마음으로 그 분이 다 지날 때까지 지켜보았고 노인 역시 뒤 한번 안 돌아보고 옆 한번 안 쳐다보고 앞의 목표만 향하여 가는 것을 보며 아마도 그는 똑바로 살았나보다라는 생각까지 했다.

이걸 보면서 이런 광경이 한국이라면 어떤 상황으로 되었을까 아마도 “저 노인네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 집에 가만히 엎드려 있지 왜 나와서 기어다녀” 하고 운전기사가 소리 질렸을 것이라고 상상을 해본다. 초등학생 꼬마가 팻말을 들고 건너가는 데도 차에 치어 생명이 위독하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내가 잘 아는 분이 횡단보도를 손을 들고 건너가는데 트럭이 달려와서 그를 들이받아 일년이 넘도록 치료를 받는 것을 보았다.

미국은 아름다운 나라다. 기다려 줄줄 알고 내 기분과 관계없이 아침에 만나면 굿모닝 하고 어디 어디서나 하이 하면서 밝은 모습으로 인사하는 것을 본다.

우리네는 기분을 감추지 못해서 조금 기분 나쁘면 금방 굳어지는 얼굴이 아닌가, 얼굴 관리를 하도 못해서 남들이 내가 무엇을 하였는가 알 정도다. 기다리는 줄이 길어도 불평 없이 새치기 안하고 기다리는 모습, 이런 작을 일들을 참을 수 있음 속에서 서로의 안전을 보장하며 신뢰받는 사회가 된다. 한국의 어린이에게 파란 불이 들어와도 양쪽 다 쳐다보고 건너가야 된다 라고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슬픔을 당하고 아픔을 당하며 살아가는지 우리는 너무나 많이 알고 있다. 조금만 참아주고 기다려 주고 양보한다면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 더 신뢰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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