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을 비교하다 보면 빠져들기 쉬운 함정이 훈계조 결론이다. 미국을 잘 아는 한국 논객들의 글을 보면 대체로가 그렇다. "미국은 이렇게 잘하고 있는 데 한국은 왜 그 모양이냐"는 식이다. 사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를 비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무리다. 나라의 크기며, 전통, 거기다가 선진도를 감안할 때 도무지 비교 대상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한국을 비교할 수밖에 없는 일이 또 생겼다. 본질적으로 비슷한 정치적 해프닝이 두 나라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해서다. 대통령 통치 스타일에 반발한 항명소동이다.
제임스 제퍼즈 연방상원의원은 인구래야 고작 60여만에 불과한 버몬트주 연방상원이다.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전혀 무명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의 지명도가 갑자기 높아졌다. 그가 공화당을 탈당함으로써 미국의 파워 베이스의 하나인 상원이 하루 아침 ‘공화당 천하’에서 ‘민주당 천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해프닝은 ‘워싱턴 정가를 강타한 대지진’으로까지 묘사됐다. 그러나 한주가 지나면서 아주 싱겁게 수습되고 있는 느낌이다. 적어도 한국적 정치 감각으로는 그렇게 느껴진다. 무언가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 텐데 하는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않아서다. 미정치권은 물론이고 정치의 뒤안길을 파헤치는 게 주업무인 언론도 제퍼즈의 공화당 탈당의 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세다.
제퍼즈의 극적인 변신에 대한 다른 평가도 있다. 앞으로 전개될 의석수 변화를 미리 내다보고 정치적 실익을 취했다는 지적이다. 공화당 소속인 90대 고령의 서몬드 의원등 일부 의원의 은퇴가 불가피하고 그렇게 되면 그 의석은 민주당 차지가 되는 것은 뻔한 이치이므로 그 전에 선수를 취해 민주당을 다수당을 만들어줌으로써 실익을 챙기는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는 평가다.
미국의 정치권과 언론은 그러나 지나치게 우경화한 부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온건파 공화당원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제퍼즈의 주장에 이의를 달지 않는 분위기다. "오만은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 다수당은 오만 때문에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다. 1994년 민주당의 경우를 거울 삼아 공화당은 조금 더 겸허한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공화당 지도부에서 나온 소리다. 백악관의 태도도 상당히 고분고분해졌다는 보도다. 당내 온건파를 감싸면서 초당적 자세로 국정에 임하겠다는 것이다. 공화당 심층부에서 나오는 소리나, 백악관에서 나오는 이야기나 모두가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다. 그런데 어딘지 맥이 풀리는 느낌이다. 정치적 음모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가 나올법 한데 너무 스무드하게 사태가 정리되어서다.
이 해프닝은 그렇지만 한가지 메시지를 확실히 전하고 있다. 정치판이란 국적을 불문하고 원래 각양의 사기꾼과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곳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는 한 가지 ‘룰’에는 철저하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여론에 승복한다는 자세다. 다른 말로 하면 유권자의 의사가 최종 심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다수의 유권자가 제퍼즈 의원의 행동을 ‘용기 있는 결정’이라는 반응을 보이자 논쟁은 가라앉은 것이다.
한국서 발생한 항명소동도 한 무명 정치인의 돌출 행동에서부터 비롯되기는 마찬가지다. 안동수 법무장관 임명파동이 그 단초다. "가문의 영광으로 한 목숨 다바쳐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 바치고자 한 자리"에서 그가 43시간만에 쫓겨나자 이 정치 코미디를 연출케 한 장관 추천자 문책 요구가 항명사건으로 비쳐지면서 정치파동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파동이 전개되는 과정을 쫓노라면 한가지 사실이 새삼 부각된다. 한국 정치에서는 어느 세력이든 일단 집권층이 되면 여론이나, 국민의 의사 같은 건 안중에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안동수 법무장관 임명파동이나, 항명소동은 그 원인이 한 가지다. 민초 따위는 우습게 아는 오만과 독선이다. "한국정치에 있어 정치인들이 모종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임하는 습관은 마지막까지 기회를 엿보며 기다리는 특징이다. 여론이나 투표결과를 보고 문제에 대해 예방조치를 취하는 경우는 찾아 보기 어렵다. 갈 때까지 가면서 요행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 정치의 이면에는 항상 무술(巫術)이 한 몫을 차지 하는 것이다" 한 정치 관측통의 지적으로 이번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정확히 내다 보고 있는 것 같다.
한국과 미국, 아니 한국 정치와 미국정치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정신 나간 일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