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둑 이야기들

2001-05-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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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욱 <목회학 박사>

며칠 전 도둑이 아파트에 ‘입질’을 하고 갔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 아파트에 찾아 왔다 허탕을 치고 간 것이다. 다행이다. ‘입질하고 간 집은 반드시 또 찾아온다’ 는 말이 있다. 다음 날 철물상 직원을 데려와 비싼 자물통 두 개를 더 사서 문에다 박아버렸다.

아파트 문은, 문을 받쳐주는 벽 둘레가 철근으로 돼 있다. 그리고 자물통을 다는 문도 철로 된 긴 막대를 달아 좀처럼 뚫기가 힘들다. 상당히 견고한 편이다. 그런데도 도둑은 철근을 우그러뜨리고 문을 열려 한 흔적이 역력했다. 문은 열리기 직전이었다.

외국인인 아파트 관리인에게 도둑이 들어오려고 했다고 말했더니 장문의 편지를 써 보내왔다. 도둑이 들어 피해를 입었을 때는 전적으로 입주자에게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전에 도둑 들지 못하게 예방을 철저히 하란다.


관리인은 아파트 문 밑에 열쇠를 두지 말고, 집을 나갈 때는 불을 계속 켜 놓으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라디오나 텔리비전을 크게 켜 놓는 방법도 도둑 예방이라 했다. 그리고 도둑이 ‘입질’만 하고 갔을 때도 반드시 경찰을 불러 상황을 보고하란다. 그래야 경찰이 더 관심을 갖고 동네를 순찰한다는 것이다.

미국 이민 온 한인 치고 대도시 아파트에 살면서 한 번이라도 도둑을 맞지 않은 사람은 지극히 행운에 속한다. 지금이라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약 15년 전 일이다. 살던 아파트에서 도둑을 맞았다. 도둑은 비상계단을 통해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그리고 온 방을 이 잡듯 다 뒤지고 장롱과 이불까지 까발려 놓은 채 유유히 달아났다. 그 때 잃어버린 물건은 결혼반지, 아이 돌 반지와 같은 기념될 만한 것들과 카메라 등이었다.

잃어버린 물건의 가치보다 그때 가족들이 마음에 받은 상처가 더 컸다. 그 당시 우리 집안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아파트 관리인밖에 없었다. 경찰이 조사해 갔다. 그러나 그 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아파트를 옮기고 10년이 지났다. 이젠 좀 안심하며 살겠지 했는데 또 도둑이 ‘입질’을 해와 온 가족이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관리인이 얘기해 준대로 스스로 예방하는 길밖에는 없을까.

얼마전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핸드백 날치기 당한 얘기를 들었다. 그는 식품점 주차장에 자동차를 파킹하고 장을 보고 나왔다. 그 때 히스패닉 이 다가와 자동차 바퀴가 ‘펑크’났다고 말하더란다. 얼떨결에 바퀴를 보러 나간 사이 앞좌석에 놓아두었던 백을 그들이 들고 달아났단다. 그날 따라 가방에 돈이 좀 들어있었다고 한다.

이것도 얼마전 일이다. 친구와 함께 한인경영 카페엘 갔었다. 마침 그 곳엔 한국에서 온 여가수가 작은 콘서트를 하고 있었다. 그 가수는 노래 중간에 이런 얘기를 털어놨다. 미국에 들어오던 날 밤. 마중 나온 사람과 함께 공항 주차장에서 차에 짐을 실을 때였다. 흑인처럼 보이는 한 명의 여자와 또, 두 명의 남자가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켠 채 시비를 걸어왔단다.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차안에 놓았던 가방을 도둑 당해 한화로 약 700만원 어치의 손해를 보았다고.

그녀가 한국 총영사관엘 찾아가 얘기를 했더니 영사관 직원들이 그들의 인상착의까지 꿰고 앉아 있을 정도로 그들에게 피해를 당한 한국인 여행자가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영사관에서 ‘잃어버린 사람이 잘못’이란 식으로 말을 하는 바람에 더욱 분통이 터졌다는 그녀는 "왜 영사관이 한인 여행객들을 위해 안내조치 하나 취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좋지 않은 일은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좋은 게 아니냐"며 아무 일 없었던 듯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의 ‘개똥벌레’를 불렀다.

아무튼,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소 잃은 사람만 손해다. 식품점 주차장, 공항, 아파트, 어디든 도둑들은 노리고 있다. 도둑들이 이민살이를 더욱더 힘들게 한다. 하지만, 미리 미리 조심하고 대비해 피해를 당하지 않는 것만이 최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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