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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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가 금과 동을 구별 못할 때

2001-05-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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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 <주필>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미국최초로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임금보다 5배를 더 지급해 세상을 놀라게 한 기업주다. 하루에 1달러 받던 시절에 5달러를 주었으니 노동자들이 구름같이 몰려든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진으로 본 미국역사’라는 화보집에 1914년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포드자동차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룬 장면이 있다. 헨리 포드는 당시 노동자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37년이 지난후 헨리 포드는 노동자의 적으로 변해 있다. 1941년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은 밀튼 브룩스 기자가 찍은 포드사의 노사분쟁이다. 노조원들이 몽둥이를 들고 회사측이 고용한 직원을 집단구타하고 있는 장면이다.

포드는 노조에 대해 피해망상에 가까울 정도로 신경과민이 되어 있었다. 깡패를 동원해 이들을 테러하는가 하면 개인생활까지 감시, 회사를 비난하는 노동자는 인정사정 없이 해고시켜 버렸다.


강한 회사 이미지를 보여주려다 보니 자연히 강경파와 예스맨이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이 가운데서도 포드의 경호실장겸 보디가드인 베넷이란 자의 횡포는 상식을 넘는 수준이었다. 포드는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참모들을 베넷을 시켜 망신을 준 다음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게 하는 게임을 벌였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색깔을 검은 것으로 고집하는 포드에게 어떤 참모가 흰색이나 베이지색을 주장하면 보디가드인 베넷이 그 참모를 파킹장으로 끌어내 “왜 회장님에게 달려들어?” 하면서 두들겨 패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얻어맞는 것처럼 모욕적인 일이 없다. 다음날 그 간부는 당장 사표를 내고 그만 두어 버리고는 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은 인사에서도 적용된다. 포드회사를 그만둔 중견사원들은 제너럴 모터스(GM)로 흡수되어 마침내 GM이 미국 제일의 자동차 왕국으로 올라서고 포드는 사양길에 들어선다.

사회가 1등을 잘못 선정할 때 거기에는 갈등이 따른다. 금을 동이라 하고 동을 금이라 한다면 희망이 없는 조직이다. 맥이 빠져 일할 의욕을 잃게 된다. “저런 사람이 출세하는데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 뭐가 의미가 있어?” 하며 살맛 안난다는 표정을 짓게 마련이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제 콘테스트는 왜 권위가 있는가. 심사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국적이나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금이 동이 되고 동이 금이 되는 일이 없다. 여기에서 1등한 입상자는 유명한 연주자가 되고 또 유명한 연주자가 되기 때문에 차이코프스키상이 더 이름을 떨치게 되는 상승효과가 일어난다.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이 지방여행을 하는 도중 어느날 작은 마을에서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가 열리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채플린은 굉장히 흥미를 느껴 자신이 직접 출전했는데 결과는 진짜와 가짜가 뒤바뀐 것이었다.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에서 진짜 채플린은 3등이 되고 가짜 채플린이 1등으로 뽑혔다. 심사위원들은 그 동네 사람이 아닌 채플린에게 1등을 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지역차별 당한 셈이다.

금이 동이 되고 동이 금이 되는 조직에서는 하부조직이 무너지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그와같은 조직에서는 보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에 “군주가 현명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려면 그의 측근을 살펴보라”는 말이 있다. 보스가 어떤 사람을 알아주느냐에 따라 측근에 모여드는 얼굴들이 달라지고 이에따라 분위기도 변한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법무장관 인사 해프닝은 동을 금이라고 부를 때 어떤 후유증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사슴만 좇다 보면 산을 못보게 되는 것이다. 정권재창출에만 신경을 쓰는 한 그와같은 희극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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