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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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시와 파르동

2001-05-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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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은선 기자 (특집부)

혀끝에 감기는 맛이 신의 축복으로 여겨지는 와인,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 프랑스인들의 변덕스런 정치적 구미에 관해서 “258종의 치즈를 만들어내는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겠는가”라고 빗대어 말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를 자랑하는 치즈, 게다가 샤넬과 루이비통, 크리스천 디올 등 패션의 첨단을 걷는 나라, 프랑스.

어린 시절 ‘베르사이유의 장미’란 만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접했던 프랑스를 칸느영화제에 맞춰 다녀왔다.

칸느에 도착해서 무엇보다 프랑스 적인 이미지를 순식간에 느낄 수 있었던 건 ‘카페’였다. 프랑스어로 ‘커피’를 의미하는 카페는 미국의 ‘스낵 바’, 영국의 ‘펍’, 독일의 ‘비어카르텐’, 이탈리아의 ‘카페테리아’처럼 간단한 식사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의 쉼터다.


카페를 잘 들여다보면 프랑스와 프랑스인이 보인다. 프랑스에서 미국에서 마시는 커피를 기대하고 ‘카페’를 시키면 ‘쓴 맛’을 본다. ‘에스프레소’가 나오기 때문. 물을 탄 커피(카페 알롱제, cafe alonge)나 밀크커피(카페오레, cafe au lait)를 주문해야 쓴 맛을 덜 본다.

칸느의 뒷골목에 위치한 조그마한 카페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문하지 않은 음식이 나왔다고 펄펄 뛰는 한 외국인 고객이 "영어를 이해 못하느냐"고 불평하자 웨이트리스는 옆 테이블 고객들이 쳐다볼 정도의 큰 소리로 "Non(아니오)"하고는 금방 테이블에 놓았던 접시를 낚아채서 휙 뒤돌아 섰다. 미안한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고 오히려 여긴 프랑스인데 영어가 왜 필요 하느냐는 식이었다. 그야말로 다혈질적인 프랑스인의 기질이 보였다.

웨이트리스의 큰소리에 주눅이 든 다른 고객들은 손가락으로 원하는 음식을 가리키면서 더듬더듬 프랑스어를 발음해야 했다. 어느 나라에서건 영어와 인터넷이면 만사해결일 것으로 짐작했던 오만함이 여지없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그래도 관광가이드북에 실릴 정도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칸느의 카페들은 프랑스어, 영어, 이태리어, 독일어 4개국어로 표기된 메뉴 판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한숨을 돌리기엔 이르다. 메뉴 판만 영어지 막상 주문을 받는 웨이터들이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구사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거의 매일 드나들다시피 한 카페의 마음 좋아 보이는 매니저가 메모를 살짝 전해주었다. 펼쳐본 메모지에는 프랑스인과 친해지는 법이 영어로 써있었다.

"품위 있고 과장될 정도로 분명한 프랑스어로 말하려고 노력할 것. ‘메르시’(감사합니다)와 ‘파르동’(실례합니다 혹은 미안합니다) 같은 프랑스어는 절대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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