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정 회복운동

2001-05-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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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영 <뉴욕지사 논설위원>

현대사회에서 ‘가정’ 하면 ‘참 힘들다’는 소리부터 나온다. 현대사회와 가정은 어떻게 보면 물과 기름과 같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모든 것이 가정을 역행할 뿐, 따지고 보면 실상 아무런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 문화나 사회, 그룹 등 일반적으로도 대부분 가정을 해체시키는 매개체 역할만 하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현대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만 보더라도 오히려 가정이란 단란함과 연합을 해체하는 것 투성이고, 가정의 중요함이나 가치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어린이들이 보는 책에서조차 많은 혼란을 가져다 줘 가정의 기초가 되는 아이들이 우선 가치관에서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장난감만 보아도 낭만이나 꿈을 주는 바비시대는 가버리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조차 힘든 포케몬, 테레토비 시대가 도래해 혼선을 빚게 된다.

이런 현실은 청소년도 마찬가지고, 어른들 세계에서도 다 같은 상황이다. 가족 없이 얼마든지 혼자서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하는 모든 베네핏도 어떤 면에서 보면 가정의 단합을 깨는 하나의 요소라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종잡을 수 없는 사회 속에서 우리네 가정은 자꾸 자꾸 희생양이 되고 있다. 나날이 발달해 가는 첨단기술이나 문명에 따라가지 못하고 갈수록 현대사회에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사회는 시스템 자체가 부자들조차도 거의 놀고 먹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다. 심한 경쟁 사회 속에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직장이나 일터에서도 도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갈수록 해체돼 가고 있는 가정을 회복하는 운동은 한인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가정회복도 단순히 아버지가 무조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가족을 이끄는 옛 가부장제도의 가정이 아닌, 보다 화평하고 설득력 있게 가족 전부가 마음과 힘을 모으고 사랑과 이해로 서로를 포용하고 수용할 수 있는 그런 가정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가정도 거의 없고 기대하기도 힘들다. 우리는 지금 역사와 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회복 전환기에 살고 있지만 이에 관한 교육이나 계몽이 현실에 못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의 의식이나 사고 또한 그 자리를 맴돌면서 계속 답보상태를 못 면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한국식 가정은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 모두가 각자의 역할 중심으로 묶여져 있던 것이 커다란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그 기대에 못 미치거나 각자가 할 일을 감당 못하면 그 가정은 깨져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자기의 역할만을 고집한다고 하면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면 마땅히 옷을 바꾸어 입어야 하듯, 현실에 맞게 변화된 생각과 의식구조로 가정도 바뀌어야 한다.

다변화, 정보화된 사회에서는 내 앞에 떨어진 일만으로 끝나는 가정구조가 아닌, 인간적인 바탕을 기초로 한 가정이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네 가정 구조는 아버지가 파산할 경우 가족 전체가 영향을 받아 가정이 통째로 흔들렸다. 가족이 평소 인간적 교류로 똘똘 뭉쳐 있으면 가족 중에 한 사람이 문제가 있더라도 얼마든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해갈 수 있다. 그 보다 더 큰 벽도 얼마든지 무너뜨릴 수가 있다.

가족 개개인이 각자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인간적 교류차원에서 회복운동이 일어난다고 할 때 가정은 어떠한 환난이나 어려움에도 견고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인사회의 미래를 좌지우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교계의 가정만 우선 회복된다 해도 우리에게는 못할 것이 없다. 며칠 남지 않은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진정 우리가 이민생활에서 우선 순위로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곱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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