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회창 대세론」과 「이회창 불가론」

2001-05-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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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 <주필>

누가 한국에서 다음 대통령이 될까. 이 문제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항상 화제다. 서울에 출장 갔다 오느라 그동안 연락 못했다고 인사할라치면 상대방에서 대뜸 “그래,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 것 같습디까”라고 묻기 마련이다.

내가 서울에서 만나본 사람들의 의견은 대략 두가지로 요약된다. ‘이회창 대세론’과 ‘이회창 불가론’이다. 과거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가 지금 대학에 시간 강사로 나가고 있는 친구와 나눈 ‘이회창 대세론’의 대화내용을 여기에 옮겨 본다.

“이회창 대세론의 근거가 뭐지?”


“반DJ 정서지. 현정권에 대한 실망도 너무 크고. 다음 대통령선거에서는 야당후보가 되게 되어 있어”

“여당에서 영남출신 후보를 내세우면 이회창씨 아성이 무너진다는 소리도 있던데…”

“민주당이 내세우는 영남후보는 영남사람들의 마음을 잡을수가 없어. 오히려 유권자들로부터 배반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지”

“YS가 영남후보를 추천하고 거기에 박근혜씨가 가세하는 상황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YS지지 세력이라는게 부산과 경남표를 말하는 데 작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어떻게 됐어? YS측근인 김광일씨 마저 민국당후보로 나오는 바람에 떨어졌어. 얼굴 보지말고 당 보고 찍자. 이것이 영남 유권자들의 이심전심이야. ‘이인제 학습’이라고도 말하지. 이것은 YS가 누구보다 잘 알걸”

“한나라당 안에서도 만만치 않은 목소리가 있던데. 모두 이회창총재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 사람들은 차차기를 내다보고 한마디하는 것이고… 한나라당이 내분이 있고 흔들리는 것 같지만 선거가 닥치면 그 목소리는 일시에 잠재워지게 되어 있어”


이회창 대세론은 결론에 이르러 “야당에서 이회창밖에 더 있느냐. 누가 있느냐. 이름을 대보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이회창 불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과거 언론계 간부로 있다가 DJ정권에서 정부 고위직을 맡고 있는 모씨의 ‘이회창 불가론’ 내용은 이렇다.

“이회창씨는 다음 선거에서 안돼. 첫째 젊은 층에 인기가 없지. 둘째 서울과 경기에서 지지가 약해. 유권자의 45.9%가 수도권 표란 말이야. 셋째 3김이 싫어하거든. 선거에서는 3김의 파워를 무시할 수가 없지”

“이인제씨가 제대로 선거운동하지 않는데도 요즘 여론조사를 보면 이회창씨가 이인제씨를 4% 정도밖에 앞서지 못해. 그러니 선거전의 막이 오르고 여당이 공식후보를 내면서 물량으로 지원하고 TV까지 장구치고 북치고 하면 이회창씨가 어려울걸. 더구나 지금의 한나라당은 야당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 야당이란 말씀이야. 무엇보다 그의 인기가 자생적이 아니라 반 DJ정서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정해”

이 친구는 또 이회창씨가 66세이기 때문에 세대교체론이 튀어나오면 그것도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후 내가 물었다.

“그럼 영남유권자의 절대거부를 순화시키고, 젊은 층 지지를 얻어낼수 있고, 수도권에서도 인기가 있고, 후보자신이 세대교체론에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젊고 생기발랄한 여당후보가 누구란 말이야?”

이 질문에 대해 이회창 불가론자는 “그게 바로 문제야. 인물이 없어. 인물이…”라고 대답한다. ‘이회창 대세론’이 왜 먹혀드는지 이래서 또 이해가 된다.

오늘 아침 신문에는 “JP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목소리가 여당내에서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기사가 실려있다. “인물이 없어. 인물이…”라고 한숨쉬던 친구의 말이 귀에 쟁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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