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람들의 중국사람에 대한 혐오감이 생각보다 더 짙다는 설문조사의 결과가 최근에 보도되었다. 중국사람 보스 밑에서 일하는 것을 원치 않고, 자녀가 중국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미국사람들의 태도를 말해주는 결과를 읽으면서 미국사회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아시안 혐오증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전에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어놓고 인종관계를 토론하는 모임에서 어떤 백인 여학생의 솔직한 고백을 들으면서 인종차별의 깊게 내린 뿌리를 뽑아내는 것은 정부의 정책도 아니고, 인권 운동가들의 그럴듯한 말도 아니고, 우리 각 개인의 태도가 변하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백인 여학생이 자기의 불편한 심기를 털어놓았다. 자기가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아시안 커플이 음식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아시안 커플이 포도주에 대하여 깊은 지식을 가지고 주문하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상하였다 한다. 괜히 화가 나서 퉁명스럽게 손님을 대한 자신의 행동을 나중에 자세히 분석하여 보니 결과는, "감히 아시안이 고급 포도주를 즐기다니" 하는 인종차별의 쓴 뿌리에서 온 것 같다하며 분노의 원인을 말했다. 어려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백인 우월주의 사고가 무의식 속에서 표출된 자신의 태도에 크게 실망하여 하루종일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하며 수치스러운 고백이지만 자신이 인종주의자라고 털어놓았다.
근래에 들어 인종차별이 미국사회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법적으로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교육을 통하여 계몽을 하는 덕분에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안종차별이 말소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문 결과가 말해주듯이 아시안 혐오증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개인의 태도에는 별로 변화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미국경제와 하이테크에 아시안 두뇌들의 영향이 미치는 것을 보는 백인들이 아시안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하였지만, 많은 미국사람들이 동양인들에게 혐오감을 느낄 정도로 우리들을 바라보는 눈이 편치 않다는 것은 몰랐다.
동양인을 고용인으로 쓸 때, 부지런하고 친절하고 고분고분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백인들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동양인을 용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인 밑에서 일하는 입장은 용납할수 없다는 태도이니 우리들의 2세들의 장래가 우려된다.
다민족이 모여 사는 미국사회에 인종차별이 없다고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사회의 기득권을 쥐고 있는 백인들이 소수민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걸머지고 있는 권력을 쉽게 양보하고 포기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법으로, 교육으로, 지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지로 인종차별을 말살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예를 들어 반세기 전만 하여도 동양인이 집을 소유할 수가 없었다. 직장이나 학교도 유색인종에게는 좁은 문이었다.
지금은 외향적으로 나타나는 인종차별과 편견이 많이 없어진 셈이다. 내가 미국에 왔을 때만 하여도, 백인들이 동양인이나 흑인들에 대한 편견을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이 예사였다. 미디어에서도 동양인은 정원사나 하우스보이로 묘사되었고 코가 납작하고 가느다란 눈을 가진 동양배우의 모습은 웃음거리의 대상이었다.
우롱을 하는 백인이나 우롱을 당하는 동양인이나 함께 웃으며 아무 일도 아닌것처럼 지나쳐 버리고 말았던 때가 있었다.
만약 정치가나 교사가 공공연하게 소수민족을 우롱하는 말을 공적인 자리에서 한다는 것은 지금은 상식적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인종주의자로 낙인이 찍혀 커리어에 손해를 보는 것은 물론 지각 있는 사람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것을 잘 알기에 타민족에 관한 자신의 편견을 말과 행동으로 함부로 표현하지 않는 조심성을 보이는 것도 법과 교육이 가져다준 결과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의 뿌리는 개인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개인 자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뽑아 버릴 수가 없다. 백인 웨이트리스 여학생처럼 우리도 정직한 자세로 인종주의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본다면 피해자의 모습만이 아닌, 가해자의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해자임을 인정하게 될 때 인종차별의 쓴 뿌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고 뽑고자 하는 의지도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