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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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불안한 찬호

2001-05-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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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러시엄

▶ 박덕만 <편집위원>

일요일 아침 골프의 유혹을 뿌리치고 박찬호 경기중계를 보기 위해 TV앞에 앉았다. 2회 한차례 흔들려 3점을 내준 것외에는 몇차례 위기를 잘 넘기며 추가 실점없이 잘 던진 셈이지만 지켜보고 있자니 정히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불안감이 드는 것은 여전했다.

"박찬호 경기만 보면 불안한 이유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피가 물보다 진한 탓에 기대가 크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답을 하지만 솔직히 말해 박찬호가 던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도 불안할 때가 많다.

박찬호는 우선 공을 너무 많이 던진다. 이날도 6회동안 무려 111개의 투구를 했다. 더 이상 마운드에 남아 있을래야 있을수가 없었던 투구수다. 상대투수 릭 리드가 8회초 3명의 타자를 맞아 아웃카운트 없이 물러나기까지 기록한 투구수 83개와 대조가 된다. 찬호는 2회 한 이닝에만 34개의 투구수를 기록했다.


박찬호는 왜 이렇게 비경제적 투구를 하는 것일까? 경기를 혼자서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나온 피해가는 피칭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칠테면 쳐봐라!"하고 정면 승부를 노리기 보다는 코너, 코너를 노리는 공을 던진다. 코너웍이 통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날은 불리한 볼카운트를 자초, 상대 타자가 노리고 있는 한가운데 직구를 던지거나 포볼을 내줄 수밖에 없다.

박찬호가 포볼과 함께 타자의 몸에 맞는 힛바이 핏치드 볼이 많은 이유도 피해가는 피칭을 하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유리한 볼카운트인 ‘0볼, 2스트라익’을 잡아 놓은 상황에서도 이따금 문제점을 노출한다. 어처구니 없이 빠지는 볼로 타자를 유혹하려다가 안되면 차츰 더 좋은 볼을 던지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풀카운트까지 가는 일이 많은데 처음 0볼이나 1볼 카운트에서 던졌더라면 통했을 볼이 한박자 늦어진 탓에 통하지 않는다. 결국 투구수만 많아지고 경기가 힘들게 풀려나간다.

이와는 정반대로 0볼, 2스트라익 상황에서 한 가운데 들어가는 어이없는 볼을 던지다가 안타를 맞는 경우도 있다. 특히 상대투수나 하위타선에 당하는 예가 많은데 지나치게 방심한 탓일 것이다. 이같은 일을 당한 다음에는 심리적으로 흔들려 게임의 흐름이 바뀌고 만다.

박찬호가 특급투수의 대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경기에 임하는 자세를 바꿔야 한다. 우선 혼자서 경기를 이기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야구는 9명의 선수가 치르는 팀 스포츠다. 투수가 아무리 잘던져도 타자들이 점수를 못내주면 승리할 수 없다.

잘던진 볼을 상대타자가 잘쳐내고 실투한 볼은 오히려 못칠 수도 있듯이 타자가 쳐낸 평범한 땅볼이나 플라이볼을 야수실책으로 놓치는 경우도 있고 명백한 안타나 홈런성볼을 야수가 호수비로 막아줄 수도 있다. 어떤 날은 타자들이 맥을 못추는 바람에 호투를 하고도 패전투수의 멍에를 쓰는 수도 있고 어떤 날은 많은 점수를 내주고도 팀방망이에 불이 붙어준 덕분에 승리를 거저 주울 수도 있다. 또 어떤 날은 잘던지고 불펜에 마운드를 넘겼는데 이를 지켜주지 못해 다잡아 놓은 승리를 놓칠 수도 있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이같은 ‘운’이 많이 따르는 것이 야구다. 어떻게 보면 야구의 묘미가 운의 작용에서 온다고 할수도 있다. 메이저리그 야구는 한시즌에 162게임을 치르고 선발투수의 경우 한시즌 30여게임에 출장한다. 한시즌 대장정을 하다보면 몇 차례 운이 나빠 진 게임도 있을 수 있고 몇 차례 운이 좋아 이긴 게임도 있게 마련이다. 시즌이 끝난 뒤 결산을 해보면 결국은 실력대로 성적을 거두게 되니까 한두차례 운의 흐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공격은 최상의 수비’라고 했다. 박찬호가 보다 공격적인 경기운영을 펴나갈 때 승리의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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