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대로 됩니다

2001-05-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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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배라먹을 ‥" "엠병할 ‥" "육시럴 ‥"

신시대가 아닌, 구시대에 속하는 분들은 아마 금방 알아듣는 말일 게다. 적지 않은 구시대 분들이 자랄 때 밥먹듯이 듣던 말이기 때문이다.

옛 부모, 특히 어려운 시집살이에 상처를 받고 살아온 어머니들은 축복의 말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자식에게도 아무 생각없이 퍼붓던 말이다. 모두 끔찍한 말이다. 빌어먹고, 전염병에 걸리고, 그도 모자라 몸을 여섯 조각내는 형벌을 받으라는 저주다.


이 같이 저주스런 말 속에서 자란 게 한국의 구세대지만 한 가지 말 때문에 한국이 그래도 제법 살만한 나라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이 코를 흘리고 다니면 어머니들이 코를 씻어 주면서 "흥! 해라, 흥! 해"해서 그 말에 축복을 받아 한국이 그나마 그만큼 흥했다는 우스개 이야기다.
가정의 달을 맞아 한 재미있는 조사가 나왔다. 요즘 한국의 신세대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어떤 말을 가장 많이 하는가 하는 내용이다. "기죽지 말라"는 이야기가 가장 많다는 것이다.

구세대와 상당히 대조가 된다. 구세대 부모들은 가급적 자기 자식을 낮추었다. 말하자면 기죽이는 이야기만 한 셈이다. 남에게 자기 자식을 ‘돈아’(豚兒·돼지새끼 같이 둔한 자식)라고 부른 게 그 예다.

부모들로부터 기죽지 말라는 말을 주로 듣고 자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는 구세대와 많이 다르다. 개성이 뚜렷하다. 자기 표현력도 강하다. 정말 기가 안죽고 당당한 모습이다. 그런데 어딘가 남에 대한 배려가 없다. 기를 한껏 살리다 보니 그리됐는지 심하게 표현하면 제멋대로다. 젊은 세대에게 흔히 나타나는 공주병, 왕자병 증세는 이 탓인지 모른다.

미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share’란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과 물질을 나누어라, 경험도 나누어라 등등. 그래서 그런지 남에 대한, 또 커뮤니티에 대한 배려와 함께 뚜렷한 질서의식이 미국인들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말에는 영적인 힘이 있어 말한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가급적 좋은 말을 하고 남에게 덕담을 하라는 충고는 이 같은 언령관(言靈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부모들이 가정에서 어떤 말을 쓰는가에 따라 자식의 운명도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주의 한인 가정에서는 어떤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될까.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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