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위선에 속지 말자

2001-05-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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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영 <뉴욕지사 주필>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범죄를 하지 않았다고 전적으로 부인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큰 잘못을 숨기고 작은 잘못만 시인할 지도 모른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자기에게 불리하다면 거짓말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자가 기사를 취재할 때도 거짓말을 많이 듣게 된다. 잘못이나 비판받아야 할 내용을 취재 당하는 사람은 가급적 사실을 감추려고 한다. 반대로 잘한 일이나 칭찬 받아야 할 내용으로 취재 당할 때는 사실을 과장하거나 미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의 말이 진실이나 사실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는 이상의 진실 또는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명수사이고 명기사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산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는 말로 거짓말을 잘하는 것을 비유하지만 사실 밥먹듯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면서 거짓말을 하는 어린이나 병자도 아닌 멀쩡한 사람들이 매일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흔히 말하듯이 처녀가 결혼하기 싫다는 말, 노인이 죽고 싶다는 말, 매일 밑지면서 장사한다는 말처럼 틀에 박힌 거짓말도 있다.


그런가하면 남녀간에 마음으로 나누었던 사랑의 밀어도 거짓말일 수가 있고 철썩 같이 굳게 한 사업 약속도 거짓말이 되는 수가 허다하다. 처음부터 작정한 거짓말일 수도 있고 나중에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될 수도 있다. 생활이 복잡해진 오늘날에는 언어도 발달하여 어휘가 많아진 만큼 거짓말도 많아졌다. 말이 많으면 그만큼 거짓말이 많다는 것은 말 많은 정치인들의 말을 보면 너무도 잘 알 수 있다.

거짓말에도 종류가 많다. 그저 장난이나 재미로 하는 거짓말이 있는가 하면 당사자나 남을 돕기 위해 하는 거짓말도 있다. 또 권력이나 재산, 명예 등 이익을 취하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 있는가 하면 남에게 보복하고 남을 해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도 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거짓말이라면 대체로 용인된다. 그러나 어떤 이유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거짓말이라면 절대 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종교나 도덕에서는 거짓말을 금기시 하고 있고 법에서도 거짓말을 범죄시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거짓말을 많이 한 죄인이 떨어지는 지옥을 대규 지옥 또는 대규환 지옥이라고 하다는데 이곳에서는 옥졸이 큰 집게로 죄인의 혀를 잡아 빼 그 위에 구릿물을 붓는다고 한다. 또 혀를 불에 굽기도 하고 불에 달군 쇠톱으로 혀를 잘라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법에서는 거짓말이 사기, 위증, 계약위반 등으로 처벌을 받는다.

거짓말을 하면서 한국 불교의 최고봉의 한 사람인 성철 스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평생동안 산사에서 진리를 탐구하면서 설법을 했고 누더기 옷 두벌로 40여년간 살았던 그는 마지막으로 가진 TV 인터뷰에서 손을 내저으면서 “내 말이 모두 거짓말이야”라고 했다. 그리고 1993년 11월 4일 새벽 해인사의 퇴설당에서 열반에 들기 직전 “때가 되었다”면서 벌떡 일어나 일필휘지로 남긴 글이 있으니 바로 이렇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속세를 떠나 살았던 성철 대스님의 회한이 이렇거늘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쫓아서 온갖 짓을 다하고 살아온 범인들의 인생은 거짓 인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특히 요즘 세상에는 정치인, 종교인, 지식인들 가운데 튀는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새로운 정책, 철학, 주장 등이 서적과 각종 미디어를 통해 범람하고 있다. 상식과 양심, 인간성에 어긋나는 거짓 주장도 많다. 불량식품이 건강을 해치듯이 공산주의나 나치즘, 사이비 종교와 같은 거짓은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해치고 인류를 파멸시킨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런 위선들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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