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서 고생하는 이유

2001-05-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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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호원<한미가정연구원 원장>

여성의 암 퇴치모금을 위한 ‘레블론 여성을 위한 걷기/달리기’ 행사가 지난주 LA 메모리얼 콜러시엄에서 열렸다. 매해 어머니 날 하루 전날 5km를 뛰고 달리는 이 행사는 참석자 모두에게 즐거움과 자랑스러움을 안겨주는 축제다.

유모차를 타고 엄마와 함께 참여한 갓난아기들, 엄마 양손에 이끌려 구슬땀을 흘리며 걷는 꼬마들, 어린 손자손녀를 목마하고 흥얼거리며 걷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암으로 발을 절단하고 의족으로 절룩거리며 걷는 여인, 항암치료를 받고 머리카락을 모두 잃은 여인까지...

어린이를 포함해서 6만여명이 멋지게 어울린 감동적인 축제였다. 참석자 모두는 암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며, 암 퇴치모금을 위해 5km를 걷고 달리는 행사였다.


어머니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남을 즐겁게 돕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교육의 현장이었다. 자녀들에게는 어머니날을 기념해 엄마와 힘겹게 5km를 완주했다는 추억을 심어주는 행사였다.

이번 행사는 자선행사였기에 남을 앞지르고 ‘일등 하려는 영웅’(?)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햇빛에 얼굴 그을릴까 겁내는 여인들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언젠가 학교에서 하급생들을 위해 자기 아들에게 도시락을 나누어주는 ‘봉사’(?)를 시켰다고 선생에게 얼굴을 붉히며 항의했다던 한국 어머니의 모습도 물론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항변할지 모른다. "왜 내 돈들이고 사서 고생하느냐"고.

그러나 아니다. 더도 말고 자녀들을 위해 이런 행사에 참여하자. 어려서부터 자녀들을 자선 기금운동에 동참시키자. 그리고 청소년들의 넘치는 힘을 발산시키는 마당으로 이런 행사를 이용해 보자. 손해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걸릴 수 있는 암’이다. ‘나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암퇴치 기금’을 위한 행사다.

결승선은 84년 올림픽 경기를 치른 웅장한 LA 메모리얼 콜러시엄이었다. 마라톤 주자들이 콜러시엄의 굴을 통해 입장했을 때, 환영하는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소리, 포옹과 하늘을 뚫을 듯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생음악과 무대 위의 광경은 참석자 모두를 압도하고 감동시켰다. 완주자들에게 주최측이 목에 걸어준 메달은 어느 마라톤 메달보다 빛나고 컸다.

순간 필자는 이 땅의 꿈나무들에게 소원했다.

"이 할아버지가 이 메달과 번호(37292)판을 너희들에게 넘겨준다. 너희들은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성실한 시민으로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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