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물 셀폰

2001-05-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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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 <편집위원>

지난주 새라 장이 연주하는 멘델스존의 바이얼린 협주곡을 들으러 뮤직센터를 찾아갔다.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 "셀폰과 비퍼 등을 꺼주세요"라는 장내 방송이 나왔다. 지난 일요일 교회에 나갔다. 설교가 시작되기 전 목사가 "셀폰을 끄십시오"라고 당부했다.

요즘은 음악회를 가나 극장엘 가나 연주나 영화 도중 셀폰 소리가 안 나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여기뿐 아니다. 학교 수업시간과 장례식 그리고 식당 등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울어대는 게 셀폰이다. 바야흐로 문명의 이기 셀폰이 애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왜 셀폰타령을 하는가 하면 이 셀폰 때문에 얼마전 몸값 수백만달러짜리 수퍼모델이 죽다 살아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보그와 엘르 등 40여개 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버드나무 가지처럼 나긋나긋한 몸매를 지닌 금발미녀 니키 테일러<사진>가 지난달 29일 새벽 애틀랜타에서 남자친구와 차를 타고 가다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운전을 하던 남자친구가 울어대는 셀폰을 집는다고 잠깐 길에서 눈을 돌린 순간 차가 전신주를 들이받았는데 이 사고로 테일러는 심한 뇌출혈을 일으켜 대수술 끝에 지금도 병원서 산소마스크에 의지해 지내고 있다. 셀폰이 사람 잡을 뻔한 경우다.

록 허드슨이 AIDS로 사망하면서 AIDS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일어났듯이 유명 인사인 테일러가 사고를 당하자 지금 미국에서는 운전중 셀폰 사용규제에 대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얼마전 조지 파타키 주지사는 늦어도 오는 12월1일부터 운전중 셀폰 사용금지법이 발효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는데 현재 최소 40개 주에서 이와 유사한 법안 제정을 추진중이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1억1,500만명의 미국인이 셀폰을 갖고 있으며 그 중 80%가 운전중 이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1997년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은 운전중 셀폰을 사용하다가 교통사고를 낼 확률이 음주운전 사고율과 비슷하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혁명 속에 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셀폰과 인터넷은 이제 없으면 못살 물건이 되다시피 했다. 문명의 이기란 이점도 있지만 해악도 동반하게 마련이다.

내가 편리한 셀폰과 인터넷을 꺼려하는 까닭은 그것들이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직접적인 관계와 접촉과 상호작용을 마모시키기 때문이다. 요즘은 부모와 자식간에 대화도 셀폰으로 하고 생일축하 카드와 연애편지도 인터넷으로 보내는가 하면 심지어 고해성사마저 인터넷을 통해 하는 세상이 됐다. 기계에 인간의 감정이나 속사정을 의뢰해 전달한다는 것이야말로 비정한 행위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타인과 경험을 나눌 기회를 잃어가고 있는데 어느 글을 보니 앞으로 가장 미국적 인간 풍경 중의 하나인 워터쿨러 주위에서의 잡담장면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고 한탄을 한다.


사람들은 흔히 셀폰이나 인터넷을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의 존재 이유가 항상 연결 지어져야 하는 것이어서 있으면 필요이상으로 쓰게 마련이다.

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마다 어김없이 주위사람들이 셀폰을 쓰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그런데 듣기 싫어도 듣게 되는 통화내용을 보면 내 짐작이지만 그것이 꼭 식사를 하면서까지 해야 할 얘기가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그냥 있으니까 쓰는 것인데 바쁘고 급한 것이 자랑인 요즘 세상에 사람들은 혹시 셀폰 사용을 무슨 공사다망함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미래학자인 폴 사포는 디지털 혁명으로 인간의 삶은 보다 나아졌는가 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그것으로 인한 장단점이 다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디지털 혁명은 결코 우리에게 한가한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고.

따르릉거리며 울어대는 셀폰과 깜빡거리는 인터넷의 유혹을 물리치기가 어려워 그것을 쓰는 사람들이 평화의 고요를 찾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인터넷 중독이 점점 사회문제로 대두 대고 있는 것은 문명의 이기 사용에 대한 당연한 대가 지불이라고 하다.

요즘 상영중인 에로틱한 영화 ‘세상의 중심’(Center of the World)을 보면 닷컴사업으로 떼돈을 번 젊은이가 두문불출하고 세 개의 컴퓨터로만 외부와 접촉하는 장면이 있다. 이 젊은이가 기술에 지쳐 컴퓨터 밑에 몸을 움츠리고 누운 모습이 마치 벌레로 변한 그레고어 잠자 같아 측은해 보인다. 기계란 인간을 이렇게 고독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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