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종도 갯벌, 아니 그럴 수가

2001-05-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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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태(시인)

지구는 인류의 소유가 아니다. 한국의 땅과 자연은 한국인의 소유가 아니다. 돈을 주고 사용권을 샀더라도 자연이란 개인의 소유도 아니고 집단의 소유도 아니고 아무리 막강한 통치력과 경제력을 갖고 제 맘대로 국경을 그어 놓았다 해도 지구의 어느 작은 부분마저도 그 어느 국가의 소유가 아니다.

지구는 태어나는 모든 생명에게 산실비용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임대료마저도 받지 않고 개인을 살다 가게하고 가족이 둥지를 틀게 하고 사회가 장터를 벌리도록 있는 품을 다 내어주고 국가도 실컷 놀다 가게 한다. 그러나 지구는 다만 무상으로 빌려줄 뿐 등기부는 내어주지 않는다.

임대료를 받지 않는 지구는 자연이라는 신비한 옷감으로 옷을 지어 입고있다. 그 아름답고 신비한 자연의 옷을 임대료도 내지 않고 살고 있는 무례한 인간들이 감사한 마음을 지니기는커녕 더럽히고 찢어발기고 악취가 나도록 오물과 약품과 폐기물을 퍼다 부어 오염 정도가 아니라 재생불가능 하도록 파괴하여 불구를 만들고 있다. 아니 이에 불구가 되고만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당신네 집 앞마당에 어느 누가 쓰레기나 폐기물을 조금이라도 흘리고 그냥 가려고 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다. 흩어져 흐르는 큰 강은 지구의 큰 핏줄이요 작은 강은 중간쯤의 핏줄이요 시냇물은 실핏줄이고 산맥은 뼈대요 들녘은 살이고 바다는 체내의 수분이다.

당신의 몸 어디에 어느 누가 생채기를 내고 그냥 가려고 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들은 지구에게 갖은 못된 짓을 하고 그냥 가고 있다.

오늘도 신생아가 병원마다 많이 태어났을 것이다. 썩은 땅에 발 짚고 더러운 땅에 살게 하려고 아이를 낳느냐, 네 아이만 귀하고 예쁘지 네 아이가 발 짚고 살아갈 이 땅과 이 산천과 이 바다는 귀하고 예쁘지 않느냐 하고 묻는다면 낳던 아이도 되돌리고 싶을 것이다.

갯벌은 앞마당이다. 한국 국토의 앞마당인 갯벌이 거의 다 죽어서 시커먼 속살만 드러내놓고 시체로 누워 있다. 인천 국제공항의 새 모습에 흥분하기 전 공항전용 도로에서 본 영종도 근처의 갯벌은 죽은 지 한참 된 시체, 그 자체였다. 산에는 산새가 사라지고 바다에는 물새 한 마리 보이지 않은 채 두려운 적막만 검게 덮여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바닷물이 갯벌에서 놀다가 빠져나가면 바구니를 든 아낙들이 몰려와 바닷물 대신 채우던 갯벌에는 바지락 참게들이 몰살을 당한 후 할 일이란 썩는 일 뿐이어서 아낙들이 사라진 지 오래다.

가족의 생계를 갯벌에게 맡기면 어촌의 애환과 한숨을 강물 받아 거르듯 삭여주기도 하고 파도에 쓸려 보내주기도 한 갯벌이 억울하게 타살되며 이제는 더 이상 우리의 이웃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밀물과 썰물의 간만 차이가 세계에서 첫째 둘째로 꼽히는 까닭에 웬만해서는 상하지 않는다는 우리나라 갯벌의 생명, 세계 환경단체나 학회에서도 자연보호가치의 으뜸이라고 인정을 했는데도 우리 손으로 우리의 앞마당을 다 죽여버렸다.

자연에는 불변의 법칙이 있고 그 법칙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함인데 사람의 손만 닿으면 그 법칙이 무너지고 법칙이 불법이 된다. 지구는 한 발자국도 그 궤도에서 벗어나 외도하지 않는다. 짧은 세월에 나만 살다 그냥 가버리면 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은 집 쓰레기, 집단은 화공약품 폐기물, 국가는 핵 폐기물, 없앨 수 있으면 없애고 줄일 수 있으면 최대한 줄여야 우리가 살 지구가 그래도 생명을 연장하여 줄 것이고 자연도 혜택을 연장하여 줄 것이다.

인류는 전쟁과 핵폭탄으로 망하지 않는다. 자연에 버림받아 망할 뿐이다. 집안도 치우지 않으면 폐가가 되듯이 쌓이는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 자연보호에 눈 멀고 귀 멀고 코 막힌 동족을 일깨워 물새가 나는 국토의 앞마당 갯벌만은 되살릴 수 있도록 자연보호운동을 미국에서 보아온 동포들이 조국을 향해 앞서 외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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