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는 부족시대를 살고 있는가

2001-05-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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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명은(소설가)

우리가 사는 동네에는 한국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어쩌다 동양사람을 보게 되면 반가운 마음이 일어나고 상대가 한인인 걸 알게되면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런데 요즈음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동포임을 확인하기가 바쁘게 “어느 교회에 다니세요?” 하고 물어올 때가 많아 곤혹스런 기분이 들곤 한다. 작은 동네에 교회가 여럿 생기다보니 몇명 되지도 않는 교포들이 이쪽 저쪽으로 나누어져 서로 적대시되는 모습이, 마치 그 옛날 청동기 시절에 무리지어 살며 패싸움하던 부족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단 우리 동네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 중의 70% 가량이 기독교 신자라니, 대부분의 한인사회가 이와 비슷한 상태로 분열되어 있고,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들은 소속될 곳이 없어 따돌림당하고 있을 것이다.

기독교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한국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왜곡되었고 전통 유교와 미신적 요소까지 혼합되어 돌연변이를 일으켰으며 그것이 다시 미국으로 이전되어 한인사회에서 급성장하면서 이민사회에 병폐마저 끼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때 내가 다니던 교회의 어느 목사가, 이웃 교회의 교인들은 눈빛조차 이상하다면서 ‘마귀교회’라고 표현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그 교회 교인들을 ‘마귀’로 여기며 멀리하는 걸 보게 되었다. 목사의 한 마디가 그러한 파괴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때 그 목사는 우리의 이민생활을 출애급기의 광야생활에 비유하면서, 자기가 마치 모세인 듯 절대권위와 복종을 요구했는데 그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놀라울 정도였다.

교포사회에는 그런 목회자들이 상당히 있고 그들은 기독교가 체험의 종교이며 신비의 종교임을 앞세워 마치 축복과 저주가 자기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처럼 교인들을 오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높은 교육수준을 자랑하는 소위 엘리트(?) 교인들마저 그런 미신적 권위 앞에 맹종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어릴 적에 받았던 한국식 교육이 개인의 비판력을 마비시켰던 것도 문제겠지만, 미국생활을 30년 넘게 지낸 사람들까지 그러는 걸 보면 우리의 유전자 속엔 합리적 사고능력이 애초부터 결여된 것인지 비감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21세기, 우리는 정보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사고방식은 그 옛날 사제들이 부족을 총괄하던 원시적 공포에 묶여있으니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온갖 종류의 인종들 틈에서 장차 우리 민족이 설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기독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마저 사랑하는 고귀한 종교이다. 즉 창조주를 경외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삶의 종교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종교라도 어떤 사람이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지게 마련이다. 종교심이 물러간 학교에 총기가 들어오고 농장에선 소들이 미치고 구제역이 발생하는 것도 생명을 무시한 인간의 탐욕이 자연계를 교란시킨 결과일 것이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바리새인 같은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미신적 기복신앙에서 빠져나와 모든 생명체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의 종교’를 처음부터 새롭게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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