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낚시하는 아버지와 아들

2001-05-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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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종윤 <수필가>

한인 청소년들이 잇달아 갱들로부터 희생되고 있다. 내 자식이 당한 일이 아니니까 괜찮은 것일까? 아무 잘못이 없는 청소년이 죽었다는 데도 별 관심이 없다. 사는 일에 매달려 자녀들을 방치 한 채 숨돌릴 새도 없이 뛰다보니 경제적으로 한숨 돌릴만해지면 어느새 훌쩍 커버린 자녀들은 외로움과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해 방황의 길을 떠난 다음이다.

교육열이라면 어느 민족보다 높은 한인 사회가 왜 이렇게 빗나간 청소년 문제로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일까. 가치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치체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물질적 가치요, 다른 하나는 정신적 가치다.

흔히 사람들은 말하기를 물질적 풍요만으로 우리들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실생활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그 희생이 부부만의 것으로 끝날 경우에는 다행이다.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입고 싶은 것 못 입고, 자고 싶을 때 마음껏 자지 못하더라도 돈이나 많이 벌어 행복해 질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다. 하지만 자녀가 있는 경우는 다르다. 자녀는 부모와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이야기다. 낚시를 갔다가 고등학생쯤으로 되어 보이는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를 만났다. 매일 아들을 데리고 낚시를 하기에 왜 주중인데 아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낚시를 다니느냐고 물었다. 말이 없던 아버지는 하늘에 떠있는 뭉게 구름을 쳐다보며 한숨을 길게 쉬더니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다섯 살에 이민 왔다. 새벽에 나가서 밤늦도록 일을 하던 어느 날 아버지는 경찰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갱단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구속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아들이 학교에 안 간지가 오래되었고 갱 단에 소속되어 엄청난 일을 저지를 모의를 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비즈니스와 아들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마약에 절어 눈동자가 풀려버린 아들을 갱 단원들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24시간을 함께 지낸다고 했다. 아들이 낚시를 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일 바다에 나와 낚시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해가 갔다. 마약과 혼숙, 극단적인 갱 활동으로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의 아들은 넋이 나간 허수아비 같았다. 이런 경우가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다.

사람이 개를 물었을 때는 뉴스가 되지만 개가 사람을 물었을 때는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처럼, 이웃의 자녀가 죄 없이 희생되고 그 가해자가 한인 청소년이라는데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말로는 자녀 교육 때문에 이민을 왔다고 하면서도, 자녀들을 스프링클러로 물만 주면 자라는 잔디 정도로 생각하는 것인지 말과 행동이 다르다.

어느 날 아침 비가 오고 있었다. 부엌에는 설거지해야할 그릇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청소차 오는 날이라 쓰레기통도 내 놓아야하고, 학교 가는 큰아이의 우산도 찿아 주어야 하는데 2층에서는 아기가 마구 울어댄다. 전화 벨 소리마져 들린다.

아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때 샤워를 끝낸 남편이 계단을 내려오며 ‘여보, 당신 너무 정신이 없겠어요. 2층에서 우는 아기에게 우유나 먼저 갖다 줘요. 잠깐 전화 먼저 받고, 큰아이 얼른 학교 데려다 주고 와서 쓰레기통도 내놓고 설거지도 해줄께요…’이런 가정이라면 아이들이 빗나갈 수가 없다.

만약 남편이 ‘당신 지금 저렇게 애가 우는데 안들려? 여지껏 엊저녁 설거지도 안하고 뭘 한거야, 큰아이 학교 준비도 못해서 그 모양이고…, 어이구 여자가 게을러 터져 가지고는…’하고 말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남편이 아내를 이해하는 마음은 아내가 남편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통하게되고 그 마음은 곧 자녀들에게 전이되어 행복한 가정,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이것이 바로 청소년 문제의 핵심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처럼, 자녀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가 밸런스를 유지하여야 하는데도 지나치게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한 탓에 생긴 사회적 현상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청소년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할 수가 없다.

자녀들은 말이 통하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부모를 원한다. 대화를 하자.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자. 공부를 좀 못하면 어떤가. 모두가 일등을 할 수는 없는 것. 진정으로 친구가 되어주고 알아 줄 때 빗나가지 않을 것은 물론, 남을 해치고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 농부의 씨뿌리는 이야기가 있다. 씨가 길가에 뿌려지면 새가 주워 먹어버리고, 돌밭에 떨어지면 뿌리는 내리지만 양분이 없어 말라 죽게되며,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싹은 나지만 곧 시들어 버리고, 옥토에 떨어진 씨만이 곧게 자라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청소년이라고 하는 씨앗들이 한인사회라고 하는 밭에 떨어져 싹을 틔울 때 결코 자갈밭이거나 가시덤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옥토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술집도 줄여야 하고, 다양한 정신건강을 위한 문화가 생겨나야 한다. 한순간의 실수로 본인은 물론, 온 가족이 불안과 고통 속에서 지내는 것이 어찌 그들만의 잘못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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