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시아계 때리기’와 관련해서...

2001-05-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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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이드

▶ 옥세철 <논설실장>

"우리 동포를 이만큼 대접해 준 건 중국 공산당밖에 없다" 연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 조선족 사회의 원로급 인사가 한 말이다.

이 분의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다. "왜정시대 중국의 조선족은 일제의 심한 탄압을 받았다. 해방이 됐지만 조선족의 입장은 더 나빠졌다. 무정부 상태에서 조선족에 대한 테러가 잇달았다. 친일분자로 인식돼서다. 국민당 정부는 공공연히 조선족을 친일분자로 취급했다. 공권력의 외면 하에(혹은 비호 하에) 중국인들의 폭행, 약탈, 살인등 행위는 날로 극심해졌다. 외진 지역에서는 심지어 조선족 마을 주민 전체가 학살되기도 했다. 모택동군이 들어오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조선족에 대한 폭력을 근절시킨 것이다. 이후 소수민족 보호법령이 발표되면서 조선족에 대한 대우는 급격히 호전됐다. 이 같은 대접을 받게 된 건 물론 중국정부의 소수민족 보호정책 탓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항일전쟁에서, 또 국공 내전에서 많은 조선족이 피를 흘린 대가다."

아시아계를 소재로 한 조크가 유행이다. 정치풍자 만화, 라디오 토크 쇼 등에 가장 자주 등장했던 인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클린턴과 르윈스키였다. 조지 W. 부시도 심심지 않게 등장했었다. 요즘은 달라졌다. 미국과 중국의 정찰기 충돌사건 이후 아시아계 액센트의 브로컨 잉글리시, 옆으로 쭉 찢어진 눈 등, 이런 것들이 싸구려 코미디의 주 메뉴가 됐다. 뭐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과거 월남전 때, 또 아시아계 정치헌금 스캔들 때에도 있었던 일이었으니까.


최근 유행을 타고 있는 아시아계 소재의 조크는 그러나 드러내놓고 인종차별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또 미국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아시아계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교묘히 이용한 악성에, 저질의 조크다. 사실 미-중 정찰기 충돌사건 이전에도 미국인들의 아시아계에 대한 시각은 그리 편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저질의 조크가 유행을 타게 되자 ‘아시아계 때리기’ 분위기가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 전국적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25%는 중국계 미국인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43%는 ‘다소간 부정적 입장’으로 나타나 이 두 카테고리를 합치면 절대 다수인 68%의 미국인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중국계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여론조사는 그러나 미-중 공중충돌 사건이 나기 전에 실시된 것이어서 주목된다.

미국인들은 중국계에 대해 이 같이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단순히 피부색이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계 미국인들은 미국보다 중국에 더 귀속감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미국보다 중국에 더 충성을 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편견은 중국계에만 해당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미국인들은 아시아계 전체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시아계는 영원한 외국인’이라는 시각이다.

지난주 초 연방 법무부는 두명의 일본계 과학자가 한 연구센터에서 유전자공학 기술을 일본으로 빼돌린 혐의로 기소했다. 이보다 앞서 연방수사국 요원들은 3명의 중국계 미국인을 체포했다. 기밀로 분류된 기술을 훔쳐 중국으로 넘긴 혐의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 잇단 아시아계 과학자 체포 사건이 혹시 ‘제2의, 제3의 리웬허 사건’이 되지 않을지, 아시아계 커뮤니티는 긴장하며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 아시아계 커뮤니티의 상황은 그렇다고 치고 이야기의 초점을 한인 커뮤니티로 좁혀보자. "아시아계, 다른 말로 해서 한국계 미국인은 미국 보다 한국에 더 귀속감을 가지고 있고 한국에 더 충성할 것"이라는 미국인들의 시각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인사회, 특히 LA 한인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정확한 지적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미국의 정치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적 실세가 오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웰페어 수혜에는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이웃을 위한 도네이션에는 인색하다. 이런 저런 모습의 한인 커뮤니티는 미국 사회에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도외시하는, 더 심하게 표현하면 단물만 빨아먹자는 멘탈리티의 그룹으로 혹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시안-배싱’이 만연하고 있다. 한인 커뮤니티도 분연히 일어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 모습을 한번쯤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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