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데이비스 주지사 나설 때다

2001-05-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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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그린헛

위기가 닥치면 가정이 무너지며 커뮤니티가 위협 당하고 국가의 존립이 흔들린다는 것은 우리가 TV나 영화를 통해서 수도 없이 보아 온 일이다. 전쟁 때라면 위기의 근원이 적국일 것이고 평시라면 범죄집단이나 부도덕한 기업인들, 타락한 정부관리나 화성에서 온 외계인일 수도 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나타나 구원해 주기도 한다. 역사책을 보면 조지 워싱턴, 윈스턴 처칠, 레흐 바웬사 등과 같은 인물이 많이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 흔연히 나타나 국민을 구해준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역사책에는 위기의 순간 몸을 사리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달아나는 인물들도 많이 언급돼 있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2001년 봄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가 정전사태, 전기료 대폭 인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주의회 의원들은 ‘사악한 전력생산업자들’에게만 책임을 돌리고 실효 없는 해결책들을 내놓고 있다. 주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은 위기탈출 방안을 제시하기는커녕 "내 잘못이 아니다"고 발뺌에만 급급하면서 위기가 저절로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몇 달전 만해도 차기 대통령감으로 꼽히던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가 궁지에 몰리고 있는데 대해 동정하는 주민들도 많다. 물론 현재의 위기를 데이비스가 조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안다. 그러나 지금은 데이비스가 앞으로 나서야할 순간이다. 주지사 자리에 오른 인물이라면 그만한 위기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태평성대 하에서는 누군들 주지사 노릇을 못하겠는가. 지금 같은 위기 하에서 수완을 발휘할 수 있어야 진정한 주지사 재목이 되는 것이다.

이번 캘리포니아주 전력난은 주정부가 초래한 것인 만큼 그 해결도 주정부의 손에서 이뤄져야 한다. 해결에는 두가지 방향이 있다. 첫째는 전기수급 시스템을 주정부가 관장하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시장원칙에 맡기는 것이다. 천연개스, 식품, 의류 기타 생필품은 현재 시장경제 원칙에 의해 가격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런데 왜 전기만이 예외가 돼야 하는가?

만약 자유경쟁에 맡긴다면 처음에는 가격이 오를지 모르지만 수요의 증가에 따라 발전업자들이 생산을 늘리게 돼 결국 하락하게 된다. 탐 맥클린톡 상원의원 같은 이는 주예산 흑자분을 납세자들에게 환불해줌으로써 초기 가격 상승폭을 커버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데이비스 주지사는 흑자예산을 전기구입에 사용함으로써 소비자들로 하여금 시장가격보다 낮은 요금으로 전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데이비스는 지난해 소폭 가격 인상과 장기계약을 통해 전력난을 방지해야 한다는 유틸리티 당국자들의 조언을 무시했다. 그뿐 아니라 유틸리티 문제에 문외한인 자신의 측근을 PUC 책임자에 임명함으로써 전력난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될 때까지 수수방관하는 우를 범했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도 마찬가지다. 가격을 올린 텍사스주 발전업자를 공산당쯤으로 몰아붙였다. 심지어 어떤 의원은 휴스턴을 탱크로 공격하자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유틸리티 회사들도 자사의 이익만을 챙겼다. PG&E는 주지사가 아무런 위기해소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며 파산을 신청했다. 혹자는 PG&E가 주지사, 주의회와 상대하는 것보다 판사를 상대하는 것이 편해서 파산을 신청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남가주 에디슨사는 파산 대신 송전선을 주정부에 팔아먹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낡은 송전시스템 유지에 납세자의 돈을 사용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소비자 단체들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무조건 유틸리티사의 해체를 주장하고 자유시장 체제는 사탄의 작품으로 치부하고 있다.

데이비스 주지사가 폭풍 속에 휘말린 모습을 보고 만족해하고 있는 공화당도 좋은 태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나서서 캘리포니아주 경제가 바닥으로 하락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가.

역시 답은 데이비스 주지사뿐이다. 데이비스는 정부의 입장이 아니라 시장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다. 데이비스 주지사는 왜 캘리포니아 주민이 그를 주지사에 뽑아주었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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