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LA상륙 ‘친구’ 신드롬

2001-05-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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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한 벗을 가리켜 지음(知音)이라 한다.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와 그 친구 종자기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두 사람이 서로의 속마음까지 헤아릴 정도로 친했던 나머지 백아가 높은 산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옆에서 듣던 종자기는“참으로 근사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산이 눈앞에 나타나 있구나”라고 말했고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기가 막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눈앞을 지나가는 것 같구나”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다시는 자기 거문고 소리를 들려줄 사람이 세상에 없다며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은 다음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음의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벗이 한 사람쯤 있다면 삶의 고달픔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컴퓨터와 인터넷이 벗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진실한 벗은 믿음 위에서만 가능한 법이다. "벗을 사귐에 있어서 믿음이 있어야 한다"(朋友有信)는 것은 삼강오륜에서도 강조된 바다. 노나라의 사상가 증자는 ‘벗과 사귀는 데 믿음이 있었는가’를 날마다 스스로 묻고 반성하였다.

한국에서 현재 ‘친구’ 신드롬이 불고 있다. 부산의 거친 바닷바람 속에서 악동 4명이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인데 통속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쉬리, 공동경비구역(JSA)의 기록을 제치고 6주일 사이에 600만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40대 이상 교복세대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10~20대들에게는 아버지 세대의 몰랐던 내면을 엿보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 비평가들의 분석이다. "고마해라" "밥 문나?" "만다꼬(뭐 할려고)" "단디하다(확실히 하다)" "개안타(괜찮아)" 등 구수한 부산 사투리도 인기를 끄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영화 히트를 계기로 동창모임이 활성화되고 있고 ‘아이러브 스쿨’ 등 동창회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도 방문자들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 추억상품으로 노란색 양은도시락에 눌러 담은 도시락밥을 파는 식당이 등장했는가 하면 부산시는 영화 속에 등장한 거리를 ‘친구의 거리’로 조성할 방침이라고 하니 신드롬이라고 불릴만한 경지에 이르렀다.

다음주부터 LA에서도 이 영화가 상영된다니 ‘친구’ 신드롬이 미국 땅까지 상륙하는 셈이다. 미국에서 자란 2세들에게도 아버지가 자랐던 시절의 모습도 보여줄 겸 영화관을 찾아볼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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