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술꾼과 아줌마

2001-05-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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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규<뉴욕지사 편집국장대우>

90년대초 멕시코시티를 방문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저녁 동행들과 술을 한잔하기 위해 마리아치 광장 근처로 나갔다. 우리가 찾은 술집은 마침 빈자리가 없어 돌아섰다. 막 문을 나서려는 순간 지배인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그는 대뜸 "한국인이냐" 묻고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크기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기왕이면 그 곳에서 한잔하기로 하고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덩치가 산만큼 큰 사내가 한 남자를 뒤에서 껴안아 들고 나오더니 문밖으로 패대기치듯 쫓아냈다. 깜짝 놀란 우리가 지켜보는 사이 덩치는 자리를 돌아다니면서 같은 방식으로 몇 사람을 밖으로 내몰았다. 이어 군데군데 빈자리를 한 곳으로 몰아 우리 일행이 함께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조그만 잔 하나를 앞에 두고 몇 시간을 끄는 손님이 강제 추방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이같은 수모를 받고도 항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또 측은하게 여겨졌지만 당시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지배인과 덩치가 우리를 ‘알아서 모신’ 사실에만 기분이 좋았다. 어깨가 으쓱해진 우리는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호기 있게 행동했다. 데낄라는 당연히 병째로 시키고 안주도 잔뜩 주문했다. 우리 일행이 마신 데낄라는 몇 테이블의 합계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거나하게 취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배인이 다가왔다.


만면에 함박웃음과 함께 ‘자리를 만들어 주기를 잘했다’는 표정이 역력한 지배인은 명함 한 뭉치를 우리에게 건넸다. 한국에 돌아가거든 멕시코시티에 올 친지들에게 자기네 집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만용에 불과한 행동이었지만 당시 우리는 신이 났음을 고백한다. 결국 지배인은 한국인은 술을 정신 없이 마시고 매상을 듬뿍 올려준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거나 간접적으로 들어서 알고 이같은 대접을 해준 것이다.

프랑스 관광청은 수년전 한국의 중년 부인들을 가리켜 한국에서 쓰는 단어 ‘아줌마’를 발음대로 적고 특유의 외래어로 인정했다. 관광청은 ‘아줌마’를 "집에서 살림하는 40대 이상의 한국 여성들. 자녀를 다 키워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어 높은 구매력을 가진 한국 특유의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프랑스 관광청의 이 같은 정의는 상당히 점잖은 편이지만 속뜻을 보면 외제 특히 프랑스제 상품에 탐닉하는 한국 부인네들의 샤핑 행태를 꼬집은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파리에서는 어느 가게에 ‘아줌마’ 부대가 들어서면 아예 문을 닫아걸고 다른 나라 손님들은 받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상품 진열대를 둘러보고 질문만 하고 돌아서는 다른 나라 손님에 비해 ‘아줌마’들은 놀랄 정도의 매상을 올려주기 때문이다. 구입 행태 역시 시원시원하다. 선호하는 브랜드만 내놓으면 값이나 용량 등도 까탈스럽게 따지지 않는다.

뉴욕에서 무료 혹은 저소득층 대상 의료혜택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상당수 한인들이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해 한인 직원들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하소연해 왔다. 외제 고급 브랜드의 장신구나 옷차림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미국인 직원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어떤 한인 직원은 특히 ‘중년’ 한인 환자가 오면 소름이 끼칠 정도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했다.

’한국 남자는 술꾼’, ‘외제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줌마’, ‘무료 의료보험 혜택을 받으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고급 옷차림을 하는 동포’, 모두가 ‘어글리 코리안’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일조를 해왔다. 옛 성현은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칙태), 즉 생각만 하고 배울 줄을 모르면 위험하다고 했다.

생각만 하지말고 지금부터라도 잘못된 점을 알게 됐으면 배우고 깨우치도록 하자. 나를 포함한 한인 중년들의 맹성(猛省)이 촉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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